[책과 지식] 이란 호메이니는 애처가, 유고 밀로셰비치는 경처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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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독재자를 사랑한 여인들
디안 뒤크레 지음
하지은 옮김, 문학세계사
464쪽, 1만6000원

원제는 ‘독재자의 여인들’이니 번역판 제목과 다른 뉘앙스다. 여성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독재자의 여성 편력을 다뤘으니 말이다.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에서 시작해 북한의 김정일까지 발품을 팔아 그들의 인간적 모습을 들춰냈다. 여섯 명의 독재자 중 생존한 이는 카스트로뿐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사후에야 그들의 숨겨진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라 할까.

 이란의 왕정을 뒤엎고 신정(神政)통치를 구가했던 호메이니는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준다. 열세 살의 신부 카디제를 맞아 8년이나 공부를 가르쳐 당대의 여자로서는 예외적인 교육수준을 갖추도록 했으며,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이슬람 교리에도 평생 카디제만 사랑했다. “어머니가 식사를 드신 후에야 다른 가족이 음식을 먹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는 그의 딸 파리데의 증언을 보면 호메이니가 얼마나 끔찍이 아내를 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발칸의 학살자’로 불린 유고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실은 아내의 손아귀에 쥐여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다정한 아내라기보다 이념적 동지 역할을 했던 그의 아내 미라 마르코비치는 집안의 주도권을 잡았을 뿐 아니라 정치에도 간여했다. 내전을 끝내기 위한 국제협상 때 밀로셰비치가 수시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다.

 절대권력자라면 흔히 연상되듯 화려한 엽색 행각 이야기도 당연히 나온다.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는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자들로 둘러싸였는데 ‘토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늘 따라다니는 호위대를 방문 앞에 세워둔 채 부츠도 벗지 않고 마치 소변을 보듯 급하게 아무렇게나 정사를 치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길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호위대장에게 명령을 내렸고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감정적 동반자’로 삼았다.

 5~6 명의 아내를 두었던 오사마 빈 라덴은 여러 번의 결혼을 두고 “첫 번째는 그럭저럭, 마치 걸음마를 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자전거를 타는 것 같아서 빠르기는 하나 불안정하다. 세 번째는 세발자전거로 안정적이나 속도가 늦다. 네 번째 결혼에 이르면 마침내 이상적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네 번 결혼하면 모든 사람을 추월할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 아마존에선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데 정색을 한 역사라기보다 인간적 흥미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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