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당선인에게 부치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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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진홍
논설위원

# 먼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합니다. 선거 기간 이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겠지만 짬을 내 이 편지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박근혜 당선인의 구직면접 형식으로 치러진 단독토론에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그날 저는 불량식품을 근절해야 할 4대 사회악 중 하나로 든 당선인에 대해 “불량식품은 배탈나면 그만이지만 불량정치는 국민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더 우선적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호되게 몰아세웠습니다. 결국 당선인도 그 말에 동의했고 불량정치 타파를 위해 탕평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탕평의 본질을 놓고도 형식적인 지역 안배가 탕평의 전부가 아니며 진짜 탕평이 이뤄지려면 선거 때 주변에 모여든 이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일부터 없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 박 당선인을 보노라면 겉은 ‘육영수’인데 속은 ‘박정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척이나 온화해 보이지만 속의 강단은 천금 같은 무게가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선인이 약속은 끝내 지킬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경직됨으로 작용하는 때도 있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호한 의지 못지않게 생각의 유연성을 갖도록 감히 당부합니다. 언젠가 당선인이 요가를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몸의 유연성만큼이나 생각의 유연성이 중요하고 절실합니다. 생각이 유연해야 지지한 51.6%의 국민만이 아니라 48%의 반대한 국민마저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아울러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왜 낙담해 있는지, 밥 먹다 말고 일하다 말고 멍해져서 울기까지 하며 왜 스스로 ‘멘붕’ 상태라고 고백하고 있는지 그 마음의 상태로 감정이입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통합의 출발점은 인수위원장에 누굴 앉히고 자리를 어떻게 안배하느냐에 있는 것이기보다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이 느끼는 허허로움에 진정으로 다가가 토닥이고 안아주는 일일 겁니다. 물론 그들이 쉽게 마음을 열진 않겠죠.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말고 그때마다 마더 테레사의 ‘그래도’라는 글을 떠올려 보세요. “(…)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되려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줘도 당신은 발길로 차일지 모른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주라.” 본래 사랑은 기우는 겁니다. 국민들이 내 마음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그냥 아낌없이 주세요. 더 잃을 것도 더 가질 것도 없는 박 당선인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 국민면접이 있던 날 제가 최근에 쓴 책을 전해드리며 그 안에 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그 하루하루의 차이가 기적을 만듭니다.” 네, 기적을 만드세요. 국민 대통합의 기적,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기적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공약으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선인 마음의 힘이 온전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며들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박 당선인 앞에서 그 누구도 쉽게 말 붙이기 힘들다는 거! 좋게 보면 넘볼 수 없는 위엄이 있는 것이지만 그만큼 미묘한 거리감도 있다는 겁니다. 꼭 1년 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온 국민과 진정으로 소통하려면 당선인 스스로 주변과 둘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당선인 주변에 보이지 않는 인의 장막 같은 것은 없어야 합니다.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국민과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또 한번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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