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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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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팽팽하던 대선경쟁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 승자는 기쁘겠지만 어깨는 중압감으로 눌리고, 패자는 아쉽겠지만 오히려 홀가분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땅덩어리 10만 ㎢, 인구 4900만의 한국호가 당선인의 조타를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과 함께 쓰여질 5년의 대한민국 역사는 후세에 어떻게 남을 것인가?

 과거 모든 대통령이 무거운 과제들을 안고 새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박근혜 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 역시 엄중하다. 물려받은 과제들과 시대가 요구하는 새 과제들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당면한 수많은 과제 중에서도 새 정부가 마주해야 할 중요한 시대적 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위기관리다. 적어도 새 정부 초반, 혹은 임기 중 내내 세계경제가 침체현상을 보이고 국내경제가 저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저성장은 양극화, 실업, 가계부채, 부동산 문제를 악화시켜 금융안정을 위협하고 사회갈등을 고조시킬 것이다. 경제의 지나친 위축을 막고, 새로이 균열이 생기는 부분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적절한 보수를 해나가는 기민한 경제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양극화 심화를 막지 못하면 머지않아 사회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선거과정에서 공약한 경제민주화, 복지제도들이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장기적 잠재성장률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해 내는 것도 주요 과제다. 북에 새로 등장한 경험과 경륜이 부족한 지도자의 미숙한 국가통치가 언제 촉발시킬지 모르는 한반도 비상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둘째,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현 헌법과 권력구조는 민주화 25년을 거치며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외부로부터 수입한 제도와 우리 사회의 현실이 맞지 않는 공간을 불투명한 관행과 편법으로 메워 왔다. 정경유착, 부패, 권력기관의 이용 등 투명하지 않은 권력행사로 이뤄졌던 국가경영이 이제 투명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의회와 행정부 간, 그리고 행정부 내에서의 권력구조에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당 모두 개헌을 약속했으나 그 방향에 대한 논의는 충분치 못했다. 당선인은 19대 국회와 함께 개방적이며 건설적인 공론과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포함한 새로운 국가 지배구조를 위한 개헌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이제까지 경험해온 단기주의·이익집단에 갇힌 국정의 정체 및 비효율성이 지속될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은 기업에도 적용된다. 우리 기업들은 창업자의 세대를 거쳐 이제 2세, 3세의 경영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에 있으나 아직 투명·정당하며 효율적인 지배구조와 승계제도를 정립시키지 못하고 있다. 재벌뿐 아니라 공기업·포스코·KT와 같이 소위 국민기업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이 어떻게 선정되고,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가진 경영진에 의해, 어떻게 경영되는가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민주화·세계화 시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우리 고유의 상황·관습·전통으로 수용될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의 정립을 국가가 유도해 나가야 한다.

 셋째, 정부 운영체제의 혁신이다. 우리의 국가기관 및 정부 운영방식, 공직자에 대한 보수와 인센티브 체계 등이 바뀌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개발연대에 정착하게 된 현재의 관료제도와 행정방식을 세계화 시대에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정부 부서와 보직자의 직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각종 회의체의 운영방식과 관료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 나가야 한다. 바쁘게 일하는 것보다 제대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에 넘겨야 할 부문은 과감히 넘기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엄격한 직무분석과 평가로 유능한 사람은 빨리 승진시키고, 고위직을 맡으면 한 자리에 오래 근무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들을 뽑아 직업관료로 양성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이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인재들을 수시로 정부에 기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운영방식 및 보수체계로 이는 어렵다. 대통령 스스로 의지를 갖고 혁신을 주도하지 않으면 이 과정이 성공할 수 없다. 정부가 효율적이며 합리적으로 운영되면 민간부문에도 그 영향이 파급될 것이며 그 결과 우리 경제사회의 전반적 생산성 향상과 잠재성장률의 제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는 거의 반반으로 나눠졌다. 여야 정당, 의회지도자들, 시민단체를 설득하고 그들의 협력을 얻지 않고서는 국정의 진전을 이뤄나가기 힘들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말한 대로 대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과제들에 커다란 진전을 이뤄 나가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조 윤 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