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의 오! 캐스팅] 4. '거물급' 조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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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계엔 이런 우스개 소리가 돌았다. '한국영화는 두 가지로 나뉜다.

명계남씨가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그 만큼 명계남씨가 약방에 감초처럼 이 영화, 저 영화에 등장했다는 이야기이다.

여균동 감독의 '세상밖으로'에서 시작한 영화연기는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김상진 감독의 '돈을 갖고 튀어라'로 본격화되면서 정말 쉼없이 다양한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때론 전형적인 연기로, 또 때론 적역을 맡아 종횡무진 누볐던 그는 TV 드라마도 마다하지 않았고, 지명도와 신뢰를 쌓은 후엔 CF에도 종종 등장했다.

내가 알기론 개런티 협상도 항상 "알아서 주는 대로 받는다"라는 원칙으로 편하게(?) 임했다.

"제작자나 감독이 원하면 어디든 달려간다"라는 생각으로, 개런티가 5백만원이든 천만원이든, 그 이상이면 더 좋구… 하는 식으로 영화연기를 했던 그였다.

그러니 그를 캐스팅할 때 속 끓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그런 그를 통해 '적역'연기를 얻어낼 것이냐, 아니면 '식상한' 연기를 끌어낼 것이냐는 1백% 그를 캐스팅하는 당사자의 눈과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한해에도,'명계남 출연영화'를 10여편 이상 쏟아냈던 그도, 이제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을 프로듀서한 제작자로, 스크린쿼터 폐지반대운동의 선봉에 서는 한 사람으로, 부산영상위원회의 대표로 정신없이 바쁘게 뛰고 있다.

명계남씨만큼은 아니지만 요즘 일련의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는 기주봉씨이다.

'조용한 가족'에서, '방하나 있어요?'라고 물으며 산장의 첫손님으로 등장, 이튿날 자살한 이른바 '고독남'역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그는,'북경반점','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동경비구역JSA','순애보','소름', '세이예스' 등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작은 키에 선굵은 얼굴, 독특한 저음이 독특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명계남씨와 마찬가지로 연극배우로 오래 활동한 경력의 소유자로,코믹한 연기부터 정통 연기까지 폭넓은 소화력으로, 단 한씬에 등장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연기자이다.

요즘 부쩍 영화로 만날 수 있는 또 한 사람의 연기자는 이대연씨이다. 일찌기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 동성애자역으로 주인공을 맡았던 그는, 이후 '박하사탕' '공동경비구역JSA' 등에서 작지만 인상깊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현재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박철관 감독의 '달마야 놀자', 이미연 감독의 '버스, 정류장'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다. 아마도 11월부터 내년초까지 연달아 쉼 없이 그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자와 감독은 대체로 주연배우의 캐스팅에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조단역의 캐스팅에 그들의 선구안이 빛날수록, 배우들의 연기가 빛날수록 영화는 완성도와 함께 보는 맛이 더해진다.

특정 조연배우를 보기 위해 개봉 첫날부터 표를 사진 않지만, 극장문을 나설 때 그 영화에 대한 평가와 인상은 주연배우들 못지않은 조 단역 배우들의 연기조화와 수준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조연 전문배우는 없다. 단지, 훌륭한 조연연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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