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모르는 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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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며칠전 일이다. 부대 안에 위문품을 잔뜩 실은 GMC가 들어오자 우리는 작업을 하다말고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뒤이어 정성 들여 만들어진 위문주머니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어떤 전우는 주머니를 하늘높이 던져보는가 하면 두 팔로 주머니를 꼭 껴안고 걸어가는 전우도 보였다. 주머니 안에는 갖가지 간단한 필수품과 연필로 또박또박 쓴 위문엽서가 들어있었다.
○…엽서를 단숨에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 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굳세고 용감한 군인아저씨, 저도 자라 군인이 되겠다는 사연이다. 나는 곧 답장을 썼다. 며칠 후 다시 회답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 모르는 채 형제가 되었다.
오늘도 얼굴 모르는 동생에게 편지를 쓰고 동생의 건강을 빌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학교 다닐 때 위문편지를 써오지 않았다고 선생님한데 벌을 받은 일이 있는가 하면 위문품 사주지 않는다고 울면서 어머니를 괴롭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 벌써 내가 국군 아저씨가 됐구나, 내가 이렇게 성장했나? 하는 흐뭇한 생각이 가슴에 꽉 차 오르는가하면 내가 받은 위문품도 어려운 살림에 어느 어머니의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서 보내준 것이 아닌가 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길 없어 저 멀리 수평선 위에 흐르는 구름만을 바라본다. <이영남·26세·경남 진해시 한국함대사령부통신 참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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