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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나는 이렇게 본다] 김방옥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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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선 연극계의 희망적 조짐의 하나로 젊은 극작가들의 출현을 꼽을 수 있다.

과거 1970년대의 이강백.최인훈.이현화.윤대성.노경식들 이후로 우리 극계는 줄곧 극작가들의 결핍에 시달려왔다.

80년대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했던 마당극에, 90년대는 이윤택.김아라 등의 화려한 연출적 무대에 가려 희곡계는 늘 그늘이었던 것이다.

21세기를 맞은 연극계에 떠들썩한 각종 국제연극축제들을 제외하면 아직 큰 이슈나 변화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벌써 자리를 잡아버린 박근형.조광화.장진.장성희들에 뒤이어 김태웅.고선웅.김명화.박수진.김윤미.이해제 등 신인 극작가들이 출현해 엷지 않은 층을 이룬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십억대의 자금과 백만대의 관객몰이를 예사로 아는 영화계의 30대들이 흥행에 대한 강박 때문에 조폭 얘기나 엽기 취향, 퇴행적 연애놀이에 맴돌고 있다면 연극계의 30대 극작가들은 오히려 가난해서 자유롭다.

뮤지컬을 제외하면 매니어적으로 좁아진 관객들을 대상으로나마 제약없이 자신의 세계를 펼쳐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것은,역설적이지만 정부의 일회성 지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제작환경과, 이 시대에 무엇을 절실하게 얘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과, 무대 만들기가 희곡 쓰기보다 앞서는 극계의 풍토들일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 속에서도 이들은 과격한 해체적 충동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아직도 역사나 사회에 관한 거대담론 주위를 머뭇거리기도 하며, 때로는 아주 섬세한 자기만의 속살을 내보이기도 한다.

만화적 과장과 폭력에 가까운 웃음으로 인간 풍자를 꾀하는 '락 테러 락''락희 맨 쇼'의 고선웅, 시들어 버린 시대정신에 부끄러워하는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의 김명화와 '불티나'의 김태웅,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 같은 작가의 '이', 근대사에 대한 관심을 견지하는 '춘궁기'의 박수진들이 그 예다.

아직은 자기세계를 구축하지 못했지만 탄탄한 이론적 배경과 독창적인 무대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들의 앞날을 기대해볼 만하다.

김방옥 〈동국대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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