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홍수현 '아픔 간직한 소녀'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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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를 향해 아직 한참 내달려야 하는 스무살은 즐거울까 아니면 힘들까. "둘 다죠, 뭐."

찬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도 가을볕은 아직 따갑다. 눈매가 꼭 가을볕 같은 탤런트 홍수현(20) .

지난달 시작한 KBS 주말 드라마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에서 그는 무능한 아버지의 두번째 아내의 딸 진주 역을 맡았다. 그러니까 첩의 딸인 셈인데 열일곱 진주에겐 너무 버거운 짐일 게 분명하다.

"무지 아픔이 많은 아이죠. 그게 반항심으로 나타나 좀 거친 면을 많이 보여줘야 하지만 전 진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요."

"아, 그래서 그렇게 표독스러운 표정이 나오는군요"라고 말을 받자 얼굴이 좀 일그러진다.

"제가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것은 표독스럽다기보다 아무도 모르는 아픔의 극한 표현인데…. 속마음이 얼마나 절절한데요"라며 그가 항변한다. 아니 왜 그럴까. 그 드라마에선 악착스러운 연기가 매력일 터인데.

기자는 다시 같은 맥락에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혜주가 그랬듯 눈을 부릅뜨고 쏘아붙이는 듯한 연기가 여전히 눈에 들어오더라고 했다.

"연기 변신을 해보려고 무진 애를 썼거든요.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그런데 전에 찍은 영화 속 연기와 비슷하게 보셨다니. 이번엔 연기가 훌쩍 성숙해진 것같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는데…." 확실히 핀잔이 아닌 말까지 신경을 쓰는 걸 보면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많았던 것 같고 욕심 또한 적지 않구나 싶다.

이 드라마 이전 홍수현에겐 공주티가 진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갖혀 있다가 119구조대원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 CF속에서 "아저씬 산소 없이 살 수 있어요?"란 깜찍한 멘트로 눈길을 끈 데다, 얼마전 종영한 MBC '맛있는 청혼'에서 홍주리 역으로 '캔디'속 이라이자의 푼수 버전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공주티는 벗어나야죠"라고 말한다. 실제 '아버지처럼…'에서의 연기는 그가 바라는 대로 어느 정도 변신에는 성공적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성인으로 건너뛸 드라마 속에서 여전한 출생의 아픔을 어떻게 삭이고, 또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건이다.

인천 문성여상 1학년 때 폐품을 가져가다 잡지에 난 모델 선발대회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덜컥 금상을 받아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 뒤 1999년 SBS '고스트'에서 장동건을 사랑하는 빵집 딸로 데뷔해 MBC '음악캠프'의 MC와 SBS 드라마 '카이스트2'에서 수진역을 맡았다. 연기 경력을 따져보면 이제 신인은 아니다. 주요 오락프로 MC와 드라마에서 주연급까지 맡아봤으니.

"한 2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하다 '아버지…'찍기 전 아무 것도 안하고 두 달 정도 쉬었어요.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같이 시작한 몇몇 친구들보다 약간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도 싶었죠. 하지만 쉬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 하기에 달린 거라고. 제대로 된 저를 보여줘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요즘 신도 나고 재미도 있어요."

오른쪽 뺨보다 왼쪽 뺨이 더 예쁘다고 사진 찍을 때 자꾸 왼편을 내미는 홍수현. 스무살도 싱그럽지만 분명한 자기 주장도 보기 좋다. 그날 가을볕은 오후 늦도록 여전히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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