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빅 유닛' 불운에서 벗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과연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랜디 존슨의 불운이 깨질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 최고의 좌완 투수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랜디 존슨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존슨과 포스트시즌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5년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3차전 선발승, 5차전 구원승을 거둔 이후 존슨은 포스트시즌에서만 무려 6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88년 빅리그 데뷔이후 페넌트레이스에서 200승을 거두고 있으며 3차례나 사이영상을 수상한 ‘빅 유닛’이었지만 포스트시즌만 되면 존슨은 고개숙인 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유난히 포스트시즌에서 난조를 보인 것 만도 아니었다. 98년 휴스턴과 샌디에고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한 존슨은 8이닝 동안 2실점만을 허용하는 호투를 보였지만 휴스턴의 타자들은 케빈 브라운의 변화무쌍한 싱커에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98년 그 해 디비전시리즈에서 2경기에 선발등판하며 존슨이 기록한 방어율은 불과 1.93. 하지만 디비전시리즈 한경기 평균 2점의 휴스턴 물방방이는 존슨의 호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4차전에서의 ‘포스트시즌의 사나이’짐 레이리츠의 결승홈런은 팀을 겨우 지탱하던 랜디 존슨을 한순간에 무너지도록 만들었다.

1999년에 애리조나 유니폼으로 새롭게 갈아입은 존슨은 팀을 창단 2년만에 지구우승으로 이끌며 포스트시즌의 악몽에서 벗어날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1차전 4-4 동점상황의 9회말 원아웃 만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온 존슨은 뒤를 이은 구원투수 밥 쉬너드가 뉴욕 메츠의 에드가르도 알폰조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포스트시즌 8번의 선발등판과 1번의 구원등판을 통해 2승 6패, 방어율 3.71을 기록하고 있는 랜디 존슨은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유난히 홈런을 허용하는 횟수가 많았다.

97, 98, 99년 3년동안 디비전시리즈에서 던진 35.1이닝 중 그가 맞은 홈런 개수는 무려 7개. 약 5이닝당 한 개씩 홈런을 맞은 셈이다. 랜디 존슨의 14년 메이저리그 경력 통산 11.4이닝 당 한 개꼴로 홈런을 허용했다는 점은 감안한다면 존슨에게 있어서 포스트시즌과 홈런은 각별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올해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와 맞붙게 된 애리조나는 올시즌 세인트루이스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랜디 존슨 대신 커트 실링을 제1선발로 예고한 상태이다.

올시즌 존슨은 세인트루이스와의 2차례 선발등판에서 승리없이 2패만을 기록하며 방어율이 7.90을 기록한 바가 있다. 13.2이닝동안 피홈런도 무려 4개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면 2차전 선발투수로 나오게 된 것이 존슨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존슨은 지금까지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95년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시리즈에서 각각 3차전에 등판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팀의 1번 선발로 등판한 바가 있다.

그나마 95년에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플레이오프에 선발로 등판했었기에 등판순서가 늦춰진 것이었다.

그동안 존슨을 짓눌렀던 1선발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존슨이 편안하게 피칭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슨의 포스트시즌 불운이 깨질 가능성 또한 충분한 상황이다.

과연 존슨은 보스턴의 밤비노 저주만큼이나 그를 감싸돌았던 포스트시즌에서의 불운을 씻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존슨에게 뿐만아니라 애리조나 팀으로서도 월드시리즈를 진출하기 위한 제1의 명제가 아닐 수 없는 부분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