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해부] 9대 공정위원장 김인호씨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기업과 시장의 생리를 이해하면서 어떻게 경쟁정책을 집행하느냐가 문제다. 정부는 독선에 빠지지 말고 깊은 고민을 하면서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김인호 전 공정거래위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사진)은 바람직한 공정위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냈다. 제9대 공정위원장(1996년 3월~97년 2월)이었지만 장관급으로는 초대 위원장을 지낸 金위원장은 지금도 공정위 간부들이 주저없이 '가장 존경하는 위원장'으로 꼽는 인물이다.

두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공정위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공정위가 최근 몇년 동안 경쟁촉진보다 재벌개혁에 치우쳤다는 비판에 대해.

"재벌이 문제되는 것은 '재벌의 실패' 외에 '정부의 실패'라는 측면이 있는데 전자만 문제삼기 때문에 기업들로부터 승복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 공정위는 재벌개혁을 선도하기 전에 다른 정부부처의 불공정 행위, 경쟁제한적 행위를 바로잡는 등 정부 실패를 교정하는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공정위엔 다른 부처의 반(反)시장행위에 대해 시정권고를 할 수 있는 권한(공정거래법 제63조)이 있지 않나. 예컨대 빅딜에 대해선 공정위가 자기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뗐다 붙였다 하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정부가 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었다."

-시장개방 등 시대변화에 맞춰 이제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을 바꿀 때가 됐다는 지적이 많은데.

"공정위가 맡고 있는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은 새로 생각할 때가 됐다. 다만 금융정책 등 다른 부처의 것까지 포함해 경쟁정책 전체의 테두리 안에서 재벌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재벌정책 중 일부만이 공정위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선 공정위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정위로서도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보다도 경쟁정책 전반을 활성화하는 방법에 의해 재벌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30대 그룹 지정제와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두 제도가 경쟁촉진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정책 집행과정에서 후유증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 행태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보기 힘든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두 제도가 꼭 경쟁제한적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정부의 경쟁정책이 바로 서고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해지고 금융의 여신심사 기능 등이 제대로 되면 자연히 사라질 수 있는 제도다."

-공정위 조사에 대한 재계의 불만이 위험수위인데.

"1996년 위원장 시절 부당 내부거래 금지 조항(제23조 1항)을 신설했다. 그 당시 이미 그룹체제의 경쟁력은 한계에 있었기 때문에 부당지원의 고리를 끊어 개별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유도하자는 취지였다.

경제력 집중 억제 부분에 넣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일반 불공정 행위 금지 부분에 들어갔다. 나는 당시 직원들에게 합리적인 조사를 강조했다. 기업의 이의신청에 대해서도 우리 직원들이 1백% 설득시키기 어려우면 대부분 수용했다.

합리적인 이의제기에 대해선 공정위가 좀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부당 내부거래는 쟁점이 많다. 가능한한 객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공정위)사무처는 검사처럼 (부당행위를) 잡아내려고 애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들은 중립적 위치에 서서 봐야 한다."

-최근 공정위 결정이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의 이의신청이 잇따르고 서울고법은 최근 과징금 조항의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공정위가 다루는 사건이 너무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공정위 결정은 예시가 되고 그것을 보고 시장에서 기업이 스스로 고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위 결정은 시장의 구조를 고치고 기업의 거래 행태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소망스럽다는 이야기다. 물론 공정위 입장도 이해가 된다.

여러 번 처벌해도 유사한 불공정행위가 반복되니 더욱 강한 제재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해도 공정위가 과도하게 과징금 부과 등 처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고법의 문제 제기는 공정위로서는 아프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잘된 일이다. 한번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보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강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김인호씨 주요 경력

-1989.5~90.4 경제기획원 차관보
- 92.6~93.3 환경처 차관
- 93.4~94.8 소비자보호원장
- 94.8~96.3 철도청장
- 96.3~97.3 공정거래위원장
- 97.3~97.11 청와대 경제수석
-2000.10~현재 와이즈인포넷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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