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 나는 건설업체…도약하는 계기 만들길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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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제가 이번에 ***를 떠나게 됐습니다. 20년 이상 일하던 곳을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최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국내 한 대형 건설사의 홍보담당 임원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습니다. 몇 주 전만해도 내년 봄 행사 스케쥴을 고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서로 발령이 났고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가 발령된 곳은 업무는 없고 자리만 있는 곳입니다.

그리 발령하면 사실상 나가라는 것이죠. 그는 아직 50대 초반이고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둘이나 있습니다. 그에게 올해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춥겠죠.

요즘 건설업계는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하루하루 불안합니다.

얼마 전 있었던 대우건설과 GS건설의 임원 인사는 다른 건설사 임직원을 바짝 긴장시켰습니다. 대우건설은 대대적인 부서 통폐합과 함께 전체 임원의 10% 10여명을 내보냈습니다. GS건설도 부서 통폐합은 물론 상무보 10여명을 부장으로 강등시켜 역시 임원수를 10% 줄였죠.

아직 인사를 하지 않은 회사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회사들의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한 대형건설사 주택담당 임원은 “지난해 시장 상황에 따라 실적이 좋지 않은 주택사업, 개발사업 등의 업무 부서의 임직원은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임원 인사가 있은 이후 일반 직원들의 인사가 진행됩니다. 부서가 통폐합되고 임원이 줄었으니 자리보전이 어려운 사람이 많겠죠.

대규모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건설업체 직원들이 많네요.

연말 건설사 자금 사정은 최악입니다. 당장 올해 안에 3000억원 이상의 회사채를 갚아야 하는 A, 내년 1월까지 수천억원의 회사채 만기를 해결해야 하는 B, C, D사 등은 자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건설기업(공모 기준)의 회사채 자금은 3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금 마련은 쉽지 않습니다. 중견건설사는 물론 시공능력평가 10위권 우량 건설사도 회사채 발행이 잘 안됩니다.

연말엔 공사대금 지급이 몰려 있어 자금난은 더 악화될 조짐입니다.

하도급업체는 생존을 위협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달 기준 원도급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를 입은 하도급업체는 지난해 415(계약액 4628억원)에서 올해 2942(계약액 36195억원)으로 7배 이상 급증했답니다.

일부에선 건설사가 압수 수색을 당하고 일부 임직원은 형사 처벌되는 사례도 나타나 흉흉합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나 4대강 사업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는 건데요. 곧 대형 건설 비리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합니다.

“위기가 진짜 변화 만들어 낸다”

건설업계의 위기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내년 경기 전망이 좋지 않아서입니다.

정부의 사회기반시설 예산 증가 등으로 건설투자가 소폭(1.6%) 늘지만 민간부문의 투자는 올해보다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은 “오직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마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지금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을 겁니다. 그 과정은 많이 혹독하겠죠.

산악인들은 보통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욱 조심한다고 말합니다. 정상을 최종 목적지로 생각해 체력을 대부분 써 버려 막상 내려갈 때 집중력이 떨어져 사고를 내는 일이 더 많아서라는 겁니다.

<내려가는 연습>이란 책에서 저자인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는 시장 침체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최근 상황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내려가는 길이다. 모두가 오르는 연습에만 열중해왔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주의 깊게 주변을 관찰하자. 미세한 변화나 조짐도 그냥 넘겨버리면 안된다. …기다림은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다림은 소리 없는 공격이자 전진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흔히 “진짜 고수는 하락기에 빛을 발한다”고 말합니다. 오를 때는 누구나 어느 정도 수익을 내지만 진짜 고수는 떨어질 때 적절힌 손절매를 통해 수익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란 의미에서입니다.

다시 유영만 교수의 말을 들어볼까요. “새는 뼛속까지 비워냈기 때문에 높이 날 수 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정된 에너지를 집중시켜 더 풍성한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강물도 자신을 버려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

기존 것을 버려야 새것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초심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겁니다. 부동산 투자로 자산이 반토막 나고, 실직의 위기에서 불안한 건설업계가 새겨들을 조언이 아닌가 싶습니다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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