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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의 효녀 가난과 싸우는「12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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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년 간 고이 가꾼 머리를 깎아 굶주리며 몸져누워 신음하고 있는 홀어머니를 구한 갸륵한 「삭발 효녀」. 홀어머니 박계화(35)씨와 단 둘이서 영동읍 부용리 설준성(45)씨 바깥 판잣집에 셋방 들어 살고 있는 신정순(12·영동국민교 3년)양은 1년 전만 해도 충남 청양군 사양면 구봉광산 감독으로 있던 아버지 신경재(55)씨와 어머니와 셋이 단란하게 살았었다.
64년 12월 4일 아버지 신씨가 광산에서 병사한 뒤 폐가 나쁜 홀어머니 박씨마저 병석에 눕게되면서부터 신 양은 가난과 싸우면서 병든 어머니를 시중들기 시작했다. 홀어머니 박씨는 남편 신씨가 죽은 뒤 오직 하나뿐인 딸 정순양의 교육을 위해 품팔이, 혹은 행상으로 몸부림쳤지만 폐결핵 환자인 그는 끝내 작년 12월 10일깨 10리길 산에서 나무 한 다발을 해다 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날 하오 2시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문턱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신 양은「어머니」를 소리쳐 부르며 가슴에 귀를 모아 숨소리를 들었다.
12년 간 매일 아침 정성껏 학교 가기 전에 어머니가 곱게 빗어주던 치렁치렁 자란 한 자(1 척) 머리를 인근 「아리랑」고개 이발소에 가서 잘라 팔았다.
5백 원을 받아 쥔 신 양은 중앙약방에 뛰어가 약을 사고 쌀가게에서 쌀 닷 되를 사다가 어머니에게 약과 밥을 지어드렸다. 그 날부터 두 달 동안 신 양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병석에 있는 어머니가 추울세라 차디찬 겨울 날씨에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우물물을 길어다 죽도 쑤었다. 한 달에 2백 원씩 받는 방세를 몇 달째 못 받은 집주인 설준성씨도 꼬마의 효성에 감동, 벌써 10짐 째 나무를 해다 주고 있다.
신 양은 그로부터 며칠 후인 12월 15일 『신부님 우리 어머님을 구해 주세요. 먹지도 못하고 추운 방에서 죽어가고 있어요…』로 시작한 편지를 영동천주교회 「원 요셉」(미국인) 신부에게 보냈다. 딱한 사정을 알게된 원 신부와 「안 바오로」(한국인) 회장은 쌀과 약을 보내오고 신 양의 어머니를 영동 구세군병원에서 계속 치료받도록 주선까지 해주었다.
【영동=배건식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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