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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땅 위에서 사는 것만으로 이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연이은 해상사고 때문에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서산 앞 바다에서 굴 따던 어민들의 15명 익사, 중공 배에 납치된 길룡호, 북괴에 끌려간 어선 2척, 그리고 이번에는 「사모아」 근해에서 참치잡이를 하던 배가 태풍을 만나 우리 선원 23명이 익사했다. 이 모두가 보름 사이에 일어난 바다의 수난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시조―학교에서도 곧잘 가르치는 시조 하나가 생각난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워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언뜻 보기에는 멋진 시조 같다. 그러나 실은 전형적인 한국의 패배주의를 상징한 것으로 아이들에게 읽힐 것이 못된다. 풍파에 놀랐다 해서 배를 팔아버리는 사공, 또 길이 험하다 해서 말을 버린 마부, 결국 안전한 땅 위에서 농사나 짓자는 옹졸한 이야기다.
이런 소극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 때문에 우리는 다른 민족보다 낙후하지 않았나 싶다. 안일을 꾀할 때, 도리어 생활은 안일을 잃는다. 세상일이 두려워 땀이나 파먹고 살자는 도피책으로 농사를 짓자는 것이라면 우리는 용감하게 그 천하지대본의 고정관념을 부수어야 될 것 같다.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저 풍파의 바다 소리가 거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나를 부른다. 명랑하게 또 광포한 저 부름소리…』 「메이스필드」의 시는 같은 바다를 읊었으되 「풍파에 놀란 사공」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풍파에 놀라 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바다로 가겠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사고의 차이에서 영국은 칠대해를 제패했고, 우리는 산간벽지의 제 땅마저도 변변히 꾸리지를 못했다.
지금 당장, 해상사고를 막을 길은 어렵겠다. 다만 바다의 수난이 겹친다 해서 어민들이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성원을 보내주고 싶다. 『죽지 못해 바다로 나간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긍지와 용기를 갖고 돛대를 다시 올려라. 위험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 위험 속에 진정한 내일의 미소가 있다. 겹치는 수난 속에서도 굴하지 말고 우리 모두 바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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