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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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동안의 여행 끝에, 고적하고 황량한 사막 어디론가 영영 사라져버린 에버렛 루에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한때 미국 젊은이들은 그를 전설적인 존재로 생각했고, 급기야 그의 삶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물론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신화로 남는 데 있어 ‘요절, 미궁 속의 죽음’만큼 신비로운 요소는 없을 테지만, 사실 에버렛 루에스 생의 마지막 5년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에버렛이 살았던 당시, 미국은 대공항의 여파로 사회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아사의 위협에 직면했으며, 수십만 명의 실업자와 청소년들이 농촌 지역을 배회하고, 화물열차를 훔쳐타고 돌아다니거나 부랑자 소굴로 모여들었다. 사상 최대의 위기였던 것이다.

또한 그즈음은 에버렛의 여행이 막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자본주의의 허구성,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문명을 스스로 버리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과 굶주림을 견뎌낼 만큼 간절한 열망으로.

이 책은 에버렛이 여행을 다니며 기록한 일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이라는 비장한 형용어구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펼친다면 아마도 크게 놀랄 것이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에버렛은 냉소적이지도 않고, 타인은 지옥이라고 떠들어댈 만큼 괴팍하지도 않았다.

당돌하거나 음울한 ‘사내아이’도 아니었으며, 마음 약한 사회 부적응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과 그리움과 우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자연 속의 모든 대상을 더듬는 그의 시선을 보면 단번에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다.

나바호 인디언들과 야영을 하며 차를 마시고 노래를 배우는 에버렛, 그 노래의 가사를 옮겨 놓는다며 ‘히아 헤야 요오’만 여러 줄 써내려간 에버렛, 여행의 동반자인 당나귀의 먹이를 걱정하는 에버렛, 그 당나귀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고 자신에게는 다른 이름을 붙인 후 잔뜩 들떠 있는 에버렛, 마음에 드는 예술가를 만나 그가 살고 있는 도시까지도 몽땅 사랑한다고 외치는 에버렛. 그 생기발랄한 호기심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예술적인 섬세한 감성이란!

그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자연스러우며, 낙천적이고 유쾌해 보인다. 마치 그 순간, 그 느낌을 마음껏 망설임 없이 즐기는 것 같다. 젊음의 객기가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슬쩍 덧붙여보자면, 길을 걷던 중 갑자기 당나귀가 걸음을 멈추고 “주인님도 보았소?”라고 묻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았다고 쓴 일기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솔직히 3일 동안 곱씹으며 웃었다.)

“나는 진실된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라 정의한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며 지나가고 있다. …잠시 후 산들바람마저 그치면서 온 세상이 적막감이 사로잡힌다. 절대적인 침묵이 숲 전체를 에워싼다. 이것이 자연이다. 자연의 위대함이다. 나는 이런 적막감에서 더해지는 외로움이 좋다. 내가 원한 것이기에….”(p.83)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소풍 가는 기분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원하던 자연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한편에는, 예술가로서의 길과 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변화 말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또 있을까, 죽음 이외에 완벽한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삶이 진정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것일까…….

책의 사이사이 수록되어 있는 에버렛의 목판화를 보고 있자면,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명암과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작은 판화는 극도로 고요해서 그저 ‘있음’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자, 이제부터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하자! 그 작은 판화 속에서 에버렛의 그림자를 찾는 것이다.

그가 사랑한 곳, 그가 나무판에 새겼던 사막과 바위와 나무와 벌판과 하늘의 어느 한쪽에 그가 숨어 있다. 하지만 찾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그 언저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만으로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황여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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