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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세상] 동포작가 김학철옹

중앙일보

입력

"작가는 책을 못보고 글을 못쓰면 이미 생명이 끝난 것이다. 내가 죽거든 조객을 받지 말고, 추도식도 하지말 것이며 시신은 화장을 해 원산행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두만강에 뿌려달라. "

중국 조선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소설가인 김학철(金學鐵.본명 홍성걸) 씨가 지난 9월 25일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 자택에서 85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국내에도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죽기 며칠 전부터 위와 같은 요지의 유서를 가족에게 남기고 곡기를 끊었다고 합니다. 김씨의 장남 해양(53.옌볜공예학교 교장) 씨는 이같은 선친의 뜻에 따라 지난달 27일 화장한 뒤 유골을 '원산 앞바다 행-김학철의 고향' 이란 '주소' 가 적힌 상자에 넣어 두만강에 떠내려보냈다고 합니다.

옌볜에 전화통화로 이 사실을 확인한 기자는 우리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가 이리도 깨끗이, 아프게 지고 있구나 하는 감회에 젖어들었습니다. 기자는 1989년 세계한민족문화축전에 초대돼 서울에 온 김씨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러시아 동포작가 아나톨리 김과 김씨의 대담을 위한 자리에서지요. 일흔이 훌쩍 넘은 고령과 한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한점 흐트러짐없이 꿋꿋하게 앉아 2시간여의 대담에 차분하고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그런 자세 자체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조선 선비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난 김씨는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 로 건너가 중국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의용대에 입대했습니다.

41년 태항산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 포로가 돼 나가사키 형무소에 복역중 해방과 함께 풀려났습니다. 해방 정국 서울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던 김씨는 46년 월북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 50년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중국 문화대혁명 와중에서 필화사건으로 10여년간 옥살이를 했던 김씨는 장편소설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 『해란강아 말하라』 등과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을 남겼습니다.

"편안히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불의에 도전하라. 나의 이 모토의 유효기간은 죽는 날까지다.

그래서 이 글도 쓴 것이다. " 김씨는 지난 6월 발행한 그의 마지막 저서 『우렁이 속 같은 세상』에서 유언인듯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붓대는 고사하고 총대도 제대로 메지를 못했었구나" 고 고백했습니다.

반백년 넘게 소설가로 글을 썼으나 시원치 않았고 독립운동.사회주의 운동의 총대를 멨으나 오히려 총상만 입었다는 자조 섞인 고백은 남들 앞에 나서길 원하고 그 보상을 반드시 바라는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지난 8월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씨를 한 중진 출판인과 함께 찾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픈 근.현대사 산 증인의 책을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출판인이었습니다.

김씨는 써놓은 글은 많이 가지고 있으니 한국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만들라며 아무 조건없이 선선히 원고를 내주었습니다. 불의에 도전한, 보상을 바라지 않은 순정이 김씨의 유작으로 우리 사회를 얼마나 감동시킬지 모르겠습니다. 혼이라도 고향 원산 앞바다에서 이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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