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우차 매각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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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 어디서나 등장하게 마련이다. 1867년 미국은 한반도의 일곱배나 되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했다.

제정러시아는 극심한 재정난을 극복하고, 영국의 북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 알래스카를 매각했던 것이다.

그 넓은 땅을 불과 7백20만달러에 팔았으니 6백평당 고작 1센트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그것도 현금은 20만달러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부채를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미국의 행운은 당시 국무장관이던 윌리엄 스워드의 8년간에 걸친 끈질긴 노력과 과감한 확장정책의 결과였다.

그러나 당시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불모의 땅을 팔아 재정을 확보한 공로로 왕이 하사금까지 내렸지만, 미국에서는 '지구상의 지옥' 과 '스워드의 냉장고' 를 매입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미 하원은 여론에 밀려 1년 동안이나 매입 대금을 승인하지도 않았고, 스워드의 뇌물 의혹까지 조사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 때문에 스워드는 쿠바를 포함한 카리브해 연안의 매입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고, 평생을 실정(□)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국민정서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유발되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경제정책을 책임있게 밀어붙이는 관료가 없어서 날려버리는 손실도 얼마나 많은가.

만약 스워드가 여론에 밀렸다면 미국은 알래스카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리브해 연안을 매입하지 못한 것도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우리라고 이런 사례에서 예외일 수 없다.

대우차의 매각은 어떠한가. 어쩔 수 없었던 차선의 선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20억달러에 팔면서도 현금은 4억달러밖에 출자하지 않는다니 어찌 허탈하지 않은가.

게다가 채권단이 20억달러의 자금까지 대여한다니 매각 대금을 누가 부담하는지조차 계산하기 힘들다. 기아차가 7조6천억원에 현대에 팔린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국내 기업에는 강하고 외국 기업엔 약한 정책 당국의 양면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물론 이번 사안 역시 정확한 평가는 먼 후일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70억달러까지 거론되던 기업 가치가 짧은 기간에 헐 값으로 폭락한 연유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과연 무엇이 한국 물(物)의 가치를 그렇게 폭락시키고 있는가. 먼저 경제논리에 역행하는 사회정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도 알래스카의 아이러니가 재현되는 것이다.

기아차를 생각해 보자. 삼성은 한때 시장에서 기아차를 매입해 자동차의 꿈을 실현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론은 너무나 매정했다.

재벌이 어떻게 전문경영 체제의 모범적인 '국민기업' 을 인수하느냐는 것이었다. 삼성은 결국 기아를 포기했고, 대신 삼성 자동차를 설립했다. 그 후 기아는 불과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우여곡절 끝에 현대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탕감된 7조원의 부채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갔고, 삼성차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만약 삼성이 기아를 시장에서 인수하도록 내버려뒀다면 경제적 손실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에서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대우차 역시 마찬가지다. 몇년 동안 누가 매각을 책임져 왔는가. 정부는 채권단에, 채권단은 정부에 수시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던가.

포드만을 단일 협상자로 선택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했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강성 노조 역시 기업가치를 떨어 뜨리는 데 한몫 해왔다.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제값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1년을 미룰 때마다 기업가치는 수십억달러씩 폭락한 셈이다.

과거는 역사에 묻혀버린다 해도 내일마저 버릴 수는 없다. 다음 차례는 한보와 하이닉스 아니겠는가. 정부가 앞장서 확실히 살리든가, 아니면 어제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여론에 급급하지 말고 스워드 같은 용기로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 경제는 여론이 아니라 경제논리로 시장에서 해결할 때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

鄭甲泳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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