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이천 공장 절반은 다른 회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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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반도체(http://www.hynix.com)의 본사인 경기도 이천공장. 충북 청주.경북 구미공장과 함께 세계적 반도체 생산기지의 위용을 뽐냈지만 이곳 임직원 절반의 명함에는 '하이닉스' 라는 이름이 없다.

올들어 웬만한 비주력 사업 분야를 분사하거나 외국에 내다팔아 총 1만4천여명의 사업장 직원 가운데 하이닉스 직원은 이제 절반인 7천여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7천여명은 주로 '현대' 자 돌림 상호의 여러 업종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남남 신분이 됐다.

게다가 요즘엔 몸체인 반도체 생산라인마저 중국 등 해외에 내다팔 궁리까지 하고 있다. 이천공장의 회로선 폭 0.2㎛(1㎛는 1백만분의 1m)이상 노후설비까지 외국에 팔리면 이천공장의 하이닉스 직원은 절반 이하가 된다.

공장관리 담당인 박동진 차장은 "36만평 규모의 이천공장은 이제 경남 창원.구미공단 하는 식으로 여러 회사가 모인 공단인 셈" 이라고 말했다. 세계 3위 D램 업체인 하이닉스도 비중은 크지만 이곳의 일개 입주업체가 됐다.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온 하이닉스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가 마치 세포 분열하듯 몸집을 줄여나갔다.

그렇게 해서 생긴 회사는 현대큐리텔(휴대폰).현대네트웍스(네트워크).현대이미지퀘스트(모니터).현대교정인증기술원(기술검사).현대오토넷(자동차 전장품).현대디지텍서비스(애프터서비스).현대시스콤(통신시스템).현대아스텍(총무.공무.환경)등 올들어서만 10개가 넘는다.

반도체에 핵심역량을 모으기 위해 통신.액정표시장치(LCD)같은 주요 사업 뿐 아니라 부대 서비스사업, 심지어 구내식당 운영까지 분사했다.

이천공장에는 해외에 매각된 알짜 회사들도 적잖이 입주해 있다. 일찍이 1998년 반도체 조립부문을 미국에 팔아 칩팩코리아라는 이름으로 공장 안에서 가동 중이다.

올 상반기에 이 공장의 폐수처리 시설이 프랑스에 팔렸고, 지난달엔 박막액정 표시장치(TFT-LCD)사업이 진통 끝에 대만 캔두사에 넘어갔다.

같은 정문으로 드나들던 하이닉스 직원 둘 중 한 사람이 불과 1년새 딴 회사 직원신분이 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도 많다.

그중에 요즘 이곳 직원들이 가장 자주 되뇌는 말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하이닉스 직원과 비(非)하이닉스 직원의 입장이 수개월새 뒤바뀐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이닉스의 한 직원은 "분사한 회사들은 대개 대규모 인원감축을 감수하는 대신 부채를 터는 조건으로 떨어져 나가 몇달새 흑자 전환한 곳이 많다" 면서 "요즘엔 우리보다 실직 걱정을 덜한다" 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 분사한 회사 임직원들은 과거 주당 1만5천원 안팎에 산 우리사주를 퇴직 때 울며 겨자먹기로 수천원대에 처분했다. 하지만 요즘 1천원 안팎으로 폭락한 하이닉스 주가를 보면서 오히려 가슴을 쓸어 내린다.

최근 이천공장 직원들이 단체 귀향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때 씁쓸한 풍경도 연출됐다. 흑자 전환한 일부 분사 회사들은 추석선물이 나왔는데 복지혜택이 완전히 없어져 이를 받지 못한 하이닉스의 옛 동료들이 서운해 할까봐 이 사실을 쉬쉬하면서 선물을 몰래 주고 받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천〓홍승일 기자 hong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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