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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우스푸어만 호들갑…진짜 푸어는 따로 있는데”

조인스랜드

입력

[황정일기자]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는 월급의 절반 정도를 대출 이자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200만원을 조금 넘게 버는 데 그 중 100만원을 대출 원리금과 이자로 냅니다. 남은 돈으로 세금·교통비·통신비 등을 내면 매달 마이너스입니다.

1년 전 결혼하면서 서울에 작은 아파트 전셋집을 구했는데 전셋값 2억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은행 대출을 1억원이 받는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임신 중인 아내에게 맞벌이를 요구하기도 어려워 며칠 전에는 연이율이 25% 넘는 조건으로 신용대출까지 받았습니다.당장 생활비조차 없어서요. 김씨처럼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빚에 허덕이는 ‘렌트 푸어’가 날로 늘고 있습니다.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하우스 푸어’가 집을 소유한 '가난한 사람'을 지칭하다면 ‘렌트 푸어’는 집 구입은 커녕 전세대출에 따른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참담합니다.

렌트 푸어 증가 원인은 단연 최근 몇 년 새 급등한 전셋값 때문이죠.

정부 책임도 적지 않아

전세금 인상폭이 가계 소득 증가분을 상회하다 보니 세입자가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으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세자금보증 공급액은 1027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입니다.하지만 정부와 정치권, 은행의 관심은 온통 하우스 푸어에만 쏠리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면서 헛헛함을 느끼는 렌트 푸어가 적지 않을 겁니다.

하우스 푸어 대책에 대해 ‘푸어’라도 ‘하우스’는 있는 사람들에게 왜 지원을 해주느냐는 항변도 많습니다.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가 10 31일부터 11 21일까지 국민신문고를 통해 실시한 ‘주거정책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요, 설문에 참여한 네티즌 1131명 중 70%는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등 국가가 직접적으로 하우스 푸어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하지만 하우스 푸어 대책도 필요하긴 합니다. 어울려 사는 사회의 전염성 탓에, 투자(집 구입)의 실패(집값 하락과 빚 상환 부담 증가)로 인한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한다는 교과서 논리만 되뇔 수는 없습니다.예컨대 대출 상환 압박에 못 이긴 하우스푸어가 싼 값에라도 집을 팔기 위해 대거 매물을 내놓으면 그에 따라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이로 인해 거시경제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당장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이 아주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이 경우 피해 범위가 렌트 푸어들까지도 미칠 수 있을 것이니 하우스푸어 대책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건 응당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이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하우스 푸어에만 전념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습 갖지는 않습니다.

대선 후보 공약도 별볼일 없어

유력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렌트 푸어보다는 하우스 푸어에 더 기울어 있습니다. 그나마 렌트 푸어 대책이라고 내놓은 공약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박근혜 후보는 돈안드는 전세를 기치로 내걸었습다. 집 주인이 목돈 마련이 어려운 세입자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주고, 그 이자를 세입자가 내도록 한 제도입니다.

세입자 입장에선 사실상 월세인데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비교적 싸기 때문에 월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하지만 전셋값이 오를 때마다 추가 대출을 받기가 번거로운 점, 집주인이 세입자를 위해 과연 대출을 받아줄까 하는 점 등이 걸림돌로 지적됩니다. 문재인 후보는 주택·지역별 임대료와 계약기간을 공시하는 임대주택등록제와 1회에 한해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임대차계약 갱신 청구로 전세기간을 4년으로 늘린다는 건데요, 4년뒤 전셋값이 큰 폭으로 뛰면 더 힘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실 하우스 푸어와 마찬가지로 렌트 푸어에 대해 왜 지원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하지만 렌트 푸어의 경우 공급 부족 등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에 구멍이 생기면서 발생한 측면이 큽니다. 임대공급 확대를 게을리 하고 주택 공급 조절 등에 실패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된 것이죠.꼭 누구의 책임이냐를 가리지 않더라도 렌트 푸어 대부분 무주택 서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나 금융권의 지원과 관심이 하우스 푸어보다 더 필요하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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