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작업선, 28년 된 중고 … 업자가 멋대로 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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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울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작업선 희생자 가족들이 16일 소방방재선에서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울산 앞바다에서 침몰해 12명의 인명피해를 낸 작업선 석정 36호는 일본에서 건조된 지 28년 지난 중고 선박으로 국내 도입 후 크레인 수를 늘리는 등 임의 개조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울산해양경찰서는 이 같은 사실이 사고 원인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와 함께 작업선의 장비 결함과 안전조치 미흡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낡은 작업선에 구조 변경까지 더해져 선박 안전에 위험성이 더 높아졌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울산해양항만청에 따르면 석정 36호는 1984년 6월 18일 일본 미쓰비시(三菱)사가 만든 작업선이다. 높이 80m가 넘는 크레인이 설치돼 있고, 여기에 해상 콘크리트 타설 장비가 연결돼 있다. 이 선박은 23년간 일본 내 각종 해상작업에 투입됐다가 2007년 3월 지금의 선주인 A사가 수입했다. 석정 36호는 국내에 들여올 때 3개의 크레인이 설치돼 있었지만 올 4월께 A사가 2기의 크레인을 추가로 설치했다. 한 조선해양 전문가는 “보통 2600t급의 작업선에는 크레인 1기나 2기가 이상적인데 사고선에는 크레인 5기가 설치돼 있어 중심 잡기도 어렵고 무게에 따른 하중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중고 작업선이 임의 개조된 상태로 별다른 제재 없이 공사에 쓰일 수 있었던 것은 내구연한과 개조에 대한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해양항만청에 따르면 석정 36호와 같은 형태의 작업선은 국내에 7대뿐이다. 이들 선박은 무동력선이라 선박안전법상 선박 검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육상의 장비와는 달리 건설기술관리법에도 관련 규정이 없다. 항만청 관계자는 “사고 작업선은 선박으로 봐야 할지 건설장비로 봐야 할지 애매해 법규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를 조사 중인 감리단과 작업선 소유업체 측은 정기적으로 안전 문제에 대해 점검을 해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자는 16일 오후 현재 사망 7명, 실종 5명으로 늘어났다. 실종자 중에는 전남 순천의 모 고교 3학년 재학 중 현장실습을 위해 석정 36호에 타고 있던 홍성대(19)군이 포함됐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다른 동급생 2명은 해군에 의해 구조됐다.

 한편 사고 당시 울산 앞바다에는 오후 8시를 기해 풍랑주의보가 발효됐다. 석정 36호는 이를 알고 사고 7시간 전부터 피항을 준비했지만 바다에 내린 5개의 닻을 모두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로 침몰했다. 이에 따라 피항 전 근로자와 선원부터 대피시켰다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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