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 재계 출자총액 규제완화 엇갈린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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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30대그룹에 대해 순자산의 25%를 초과한 출자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정위는 이것을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 규제를 받는 대규모 기업집단 수는 줄일 필요가 없다며 정부 규제를 받는 대규모 기업집단은 자산 규모 3조원 이상으로 하는 안을 마련했다. 현재 자산 규모 3조원 이상인 그룹은 26개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에 대해선 재정경제부 등 경제 부처들마저 규제대상을 대폭 줄이자는 입장이어서 공정위 안은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재계 애로 모두 해결"=의결권 제한과 관련, 공정위는 "다른 회사 주식 보유 자체는 제한하지 않는다" 며 "재계가 주장하는 현행 제도의 세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 가능하다" 고 주장했다.

세가지란 ▶신규투자 곤란▶주식매각을 통한 한도초과 출자 해소시 대규모 매각손실 예상▶막대한 물량의 주식매각으로 인한 증시에 악영향 등이다.

공정위는 순자산의 25%로 돼 있는 출자총액한도를 초과한 30대그룹의 출자분은 13조1천억원이며, 최대 3조5천억원 정도가 주식시장을 통해 매각돼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의결권 제한을 통해 계열사에 대한 다단계 출자를 통한 지배력 확장을 억제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현실적인 문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의결권 제한은 '1주1표' 라는 주식회사의 기본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들의 중요 투자결정 때 주총을 열어야 한다. 어떤 출자는 의결권을 인정하고, 어떤 것은 제한하는 것을 주주들이 받아들이겠느냐" 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산권을 자의적으로 규제한다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재계에선 특히 이 방안이 기업과 투자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왔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자본주의에서 투자만 하고 의결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고 주장했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진념 부총리는 이에 대해 "의결권 제한 방안은 상장기업 주주의 문제, 자본금이 마이너스인 기업에 대한 문제, 어떤 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지를 정하는 문제 등이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금도 25% 초과분 해소명령과 관련해 의결권 제한 조항이 들어 있어 그다지 문제가 안된다" 고 강변했다.

◇ "자산 규모는 3조원 이상"=이남기 공정위원장은 "이처럼 출자총액 제한을 바꿀 경우 자산규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며 "의결권 제한 대상 기업집단은 자산규모 3조원 이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지난 8월 1일 기준으로 자산이 3조원을 초과하는 그룹은 삼성(69조9천억원)을 비롯해 신세계(3조2천억원) 등 모두 26개다.

이는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그룹을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하자는 재경부의 입장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10조원 이상 그룹은 두산(11조2천억원)을 비롯해 12개다.

李위원장은 자산규모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비율' 로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그것은 재경부가 제시한 방안 중 하나" 라고 못박았다.

이렇게 하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규제대상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가 설득력을 얻지만, 공정위는 "GDP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같은 방안은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계는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를 받는 대상을 자산규모 3조원 이상으로 하거나 10대 또는 15대 기업집단으로 축소하는 것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계속하는 일종의 편법" 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규모가 큰 기업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반기업적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 글로벌 경제환경에 맞지 않다" 고 꼬집었다.

김영욱 전문위원.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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