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안방 철강싸움은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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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하이스코의 냉연공장과 포항제철의 광양제철소는 같은 전남의 광양만 지역에 있다. 두 공장간 거리는 약 30㎞. 자동차로 30~40분 거리다.

현대 냉연공장은 핫코일을 가공해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드는 공장이다. 핫코일은 철광석을 원료로 한 1차 철강제품인데 잘 알려져 있듯이 광양제철소는 세계적인 핫코일 생산 공장이다.

*** 현대-포철간 핫코일 분쟁

그런데 현대 냉연공장은 코 앞에 있는 광양제철소로부터는 단 1t의 핫코일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연간 1백80만t의 냉연강판을 만드는 이 공장엔 연간 1백90만t의 핫코일이 필요한데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일본에서 대부분(80~85%) 수입하고 나머지는 중국.남아공.러시아.남미 등지에서 조달한다.

세계적인 불황 탓에 2분기 t당 2백5달러 했던 핫코일 수입가격이 하반기엔 2백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관세.운임 등으로만 t당 16~18달러를 물어야 해 실제 수입 원가는 여전히 2백달러를 웃돈다.

가장 큰 문제는 1백%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의 약점을 외국업체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 일부 일본업체들은 중국.동남아에는 t당 1백60~1백70달러에도 팔고 있다.

현재 철강산업은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중' 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불황이다. 세계 철강업체 생산능력은 약 10억t인데 지난해 기준 세계 소비는 8억t 남짓으로 2억t 가까이 공급과잉 상태다. 가격도 최근 2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각국의 철강업체들이 다투어 값을 내리며 자기네 물건을 사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지만 현대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대하이스코의 소원은 연간 20만~30만t이라도 포항제철이 공급해주는 것. 그러면 나머지를 외국서 수입하더라도 가격협상 때 칼자루를 쥘 수 있다는 것이다.

포철은 그러나 '절대 못준다' 는 입장이다. 자동차용 냉연강판의 원료인 핫코일은 다른 핫코일과 제조방법이 완전히 다르며, 콜라회사가 콜라 원액을 팔지 않듯 고유기술로 만든 원료를 팔 순 없다는 것이다. 현대뿐 아니라 어느 업체에도 공급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줄 수 없다는 게 포철의 입장이다.

사실 포항제철도 속사정은 딱하다. 포철은 핫코일뿐 아니라 이를 이용한 냉연강판도 만드는 업체다. 그런데 강관을 만들던 현대하이스코가 1999년 냉연강판까지 만들기 시작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현대.기아자동차가 포철 대신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의 제품을 사면서 포철에서의 냉연강판 구매분을 절반 가량(연간 50만t)이나 줄였기 때문. 포철은 황급히 외국 자동차 업체에 납품선을 뚫으러 나섰으나 세계적인 불황에 휘말려 고전하고 있다.

핫코일 공급을 둘러싼 양사간 분쟁은 법정으로까지 옮겨가 현재 1심 재판 중이다. 이런 가운데 재미는 일본업체들이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 상반기 철강수출은 72억달러, 수입은 58억달러로 14억달러 흑자였으나 일본에 대해선 6억달러 수출, 12억달러 수입으로 6억달러 적자다.

*** 최고경영자가 해결해야

국내 최대의 철강 수요업체인 현대.기아차를 계열사로 둔 현대하이스코와 핫코일을 사실상 국내 독점 공급하는 포철간의 다툼인지라 다른 철강업체들은 끼어들지를 못하고 있다. 어느 쪽에도 밉보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재하는 것도 통상마찰 우려 등으로 쉽지 않다. 산업내 문제를 법정까지 끌고간 것 자체가 업계로선 창피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 철강업계는 피말리는 생존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에선 유지노(프랑스).아베드(룩셈부르크).아세랄리아(스페인)등 3대 업체의 합병까지 추진되고 있다. 불황 탈출을 위해선 업계가 머리를 맞대도 힘든 데 안방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해결은 오로지 양사의 최고경영자가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도 시급히 만나야 '국익(國益)에 끼치는 누' 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민병관 산업부 차장 minb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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