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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장사 36년 한 우물 … “욕심 없이 ‘먹고 살 만큼만 벌자’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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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남산중앙시장에서 36년째 그릇 장사를 해온 김영대·김행환씨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목천이 고향이에요. 시골서 보리죽 먹기 싫어 뛰쳐나왔었죠. 벌써 53년 전 일이네요. 부모님 보고 싶어서 화장실 가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죠. 반평생 그릇 팔며 중앙시장에서 늙었네요.”

남산중앙시장의 큰재빼기에 위치한 영신혼수는 중앙시장에서도 제법 커서 금방 눈에 띄는 가게다. 양은냄비부터 프라이팬, 플라스틱 반찬 통, 소쿠리 등 가정용 식기류는 모두 갖춰져 있다. 영신혼수의 김영대(67)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무작정 그릇가게의 점원 생활을 시작했다. 가난이 지긋지긋해 집을 나왔던 김 대표는 지금은 속옷가게가 된 공신상회에서 처음 1년간은 그저 밥만 얻어먹으며 일을 배웠다.

주인이 계를 들어줘서 조금씩 돈을 모았지만 10년 동안 그릇가게 종업원 생활을 하며 번 돈보다 1년간 월남전에 나가 번 돈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 돈을 기반으로 결혼을 했고 부부가 함께 그릇가게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작된 그릇 장사가 중앙시장에서만 36년째다. 중앙시장 안 200m 거리를 전전하며 두 번에 걸쳐 남의 가게에 세를 얻어 장사하다가 20년 전에야 비로소 지금의 자리에 번듯한 점포를 마련하게 됐다.

부부는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지만 우직한 심성으로 한눈 팔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팠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요즘에는 한산하지만 예전에는 큰재빼기의 온양나드리(천안지하도) 자리가 터미널 가는 길이라 이 자리가 요지였어요. 1975년부터 내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손님들이 기다렸다가 그릇을 사갔을 정도로 잘됐었죠. 사기·양은·스텐그릇이 인기가 많았어요. 1980~1990년대엔 에나멜 그릇이 불티나게 팔렸어요. 그때가 좋았죠.”

영신혼수는 1970년대 후반 지금의 와촌동 동아아파트 자리에 ‘충남방적’이 있었을 때 가장 호황을 누렸다. 여공들이 월부로 혼수를 장만하던 시절이었다. 월급날을 전후로 며칠은 대목장이 따로 없었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서로 그릇을 골라주고 미리 조금씩 그릇을 사 두며 결혼을 준비하던 때였다. IMF시절까지도 불황여파를 못 느꼈을 만큼 장사는 잘 됐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파니까 써보고 다시 오는 손님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터미널이 옮겨가고 혼수도 인터넷으로 하는 세상이라 손님이 예전만 못하지만, 100만원이 훌쩍 넘던 홈세트를 하루에 네 건 이상 팔던 시절에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신혼수를 찾는 손님들은 세대 구분 없이 다양하지만 절반 정도는 대를 이어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다. 대부분 이곳에서 혼수를 장만한 부모들이 딸들의 결혼 준비를 위해 다시 찾는 경우다. 여전히 홈세트가 가장 비싸지만 합리적이고 실속 있게 준비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예전엔 잔치 때 온갖 그릇으로 잔치를 치렀는데 지금은 작은 모임도 식당에서 치르니 그릇이 생각만큼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꼭 필요한 게 그릇이지만 요즘 깨지지 않는 그릇이 좀 많습니까. 10년 쓴 바가지가 깨져서 다시 사러 왔다고 하는 손님도 있으니 요즘처럼 좋은 그릇이 많은 세상에 하면 할수록 어려운 장사죠.(웃음)”

영신혼수의 그릇은 1000여 가지 종류가 넘는다. 그릇 종류가 많으니 가격을 모두 알고 파느냐며 물어오는 손님도 있다. 가격을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어 물건이 입고되자마자 가격표를 붙여야 한다. 사계절 꾸준하게 팔리는 그릇은 역시 플라스틱이다. 봄에는 매실병·담금주 병이 잘 나가고, 김장철인 요즘엔 밀폐형 그릇, 소쿠리·다라이(고무대야) 같은 김장용품이 잘 나간다.

요 근래엔 ‘외국사람 덕에 밥 먹고 산다’ 싶을 정도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손님이 많아졌다. 손님의 20%가 동남아시아 노동자들로 압력밥솥이 많이 팔린다. 지금이야 카드가 있어 외상이 없지만 예전엔 외상으로 팔았다가 떼인 일도 많았다. 돈 때문에 손님을 많이 잃었다고 말하는 부부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이내 환해졌다.

“중앙시장에 오래 있다 보니 돈 벌어 나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망해서 나간 사람도 여럿 봐 왔어요. 가정에 우환이 있으면 모든 리듬이 깨집디다.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어려서부터 고생을 해서 그런지 비교적 수월하게 넘겼어요. 내 가게니까 ‘욕심 없이 먹고 살 만큼만 벌자’ 마음먹으니 편해요.” 영신혼수의 안주인 김행환(66)씨는 “65세까지만 장사를 하려고 했는데 다시 70세까지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몸이 건강하니까 이 나이까지 먹고 사는구나’ 생각하면 더 바랄 게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문의 041-551-6024

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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