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매매단 “9000만원 내면 정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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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06년 서울 소재 사범대를 졸업하고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J씨(31)는 인터넷에서 ‘맞춤형 채용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교직 알선업체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이 업체는 맞춤형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수시로 이력서를 학교로 보내 쉽게 사립학교 교사로 임용해준다고 홍보했다. J씨는 회비 50만원을 내고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조건이 가장 잘 맞아서 회원님께만 연락드린다”며 채용공고가 떴다는 안내 전화도 몇 차례 받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J씨는 “맞춤형 정보라는 것도 없었고 가끔 들어오는 채용정보도 다른 회원에게도 전달되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교원 임용이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는 세태를 악용해 예비 교사들의 돈을 뜯어낸 업체 대표 등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채용 알선을 명목으로 사립학교 채용 준비생들을 회원으로 모집하고 회비 총 5억원을 챙긴 혐의(사기 등)로 S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강모(48)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전직 윤리교사 출신인 강씨는 자신의 연구소가 국책사업기관이라고 속였다. 2006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신문광고나 교육 관련 웹사이트 등을 통해 회원을 모집했다. 기간제 채용 정보 서비스를 받는 정회원 475명에게서 각각 50만~77만원의 회비를 받아 챙겼다. 정교사 채용을 원하는 5명에게는 ‘프리미엄 회원’이라는 명목으로 각각 5000만~9000만원의 회비를 받았다.

 강씨는 프리미엄 회원 5명 중 3명에게서 받은 회비 1억5000만원 가운데 7000만원을 과거 자신이 근무했던 경기도 소재 G공업고등학교 이사장의 아들 강모(53·구속) 부장교사에게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돈을 받은 강 부장교사는 프리미엄 회원 3명을 사전 면접하고 채용 과정에서 최고 점수를 줬다. 이들은 전기전자통신과목, 영어과목 정교사로 채용됐다. 당시 해당 과목의 채용 경쟁률은 각각 40대 1, 20대 1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장교사 강씨는 해당 학교 이사로 있는 아내 곽모(52·불구속)씨에게 논술 문제를 빼오도록 한 뒤 사전에 문제를 해당 지원자들에게 알려주고 첨삭지도까지 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프리미엄 회원 2명은 정교사로 임용되지 못해 돈만 날렸다.

 강씨는 회원들에게 각 학교 인사 담당자들에게 얻은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며, 이 시스템은 특허까지 받았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회원들에게 제공된 정보는 특별한 게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자력으로 준비해 사립학교에 취업한 회원들에게도 수수료 명목으로 연봉의 5~13%를 내라고 요구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수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해 신용불량자로 만들겠다. 전국 학교에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씨 등은 “사립학교 인사권자로부터 교사 채용 인사권을 위임받았다”고 회원들에게 홍보했으나 경찰이 50여 개 사립학교에 확인한 결과 업체 자체를 모르거나 인사권에 대해 위임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일부 회원이 불만을 제기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환불을 요구하자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가혁·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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