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도박, 오바마를 겨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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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짜리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2일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쏘아올렸다. 이날 오전 9시49분 평안북도 동창리 기지에서 발사된 로켓은 미·중을 겨냥한 북한의 정치적 무력시위로 해석된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로켓 발사는 미국과 중국을 겨냥한 김정은의 메시지다. 더 내놓으라는 거다”라고 말했다.

12일 북한 은하-3호가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되고 있다(오른쪽 사진). [로이터=뉴시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로써 지난달 초 공산당 18차 대회에서 출범한 중국 시진핑(習近平·59) 체제, 그리고 다음 달 2기를 맞는 미국 버락 오바마(51) 행정부는 동시에 외교적 난제를 안게 됐다. 권력세습 1년차인 김정은이 주요 2개국(G2)의 리더십 교체 공간을 파고듦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엔 격랑이 일 전망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물론 우리 국방부(김민석 대변인)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도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1998년 8월 대포동-1호 미사일 발사 이후 다섯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 중 한·미가 ‘성공’으로 평가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로켓의 사거리는 1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미국 본토 LA까지 도달할 능력이다. 한용섭(국방대 부총장) 한국핵정책학회장은 “미국에 도달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현실화했다는 의미”라며 “핵 탄두 장착 등 남은 과제가 있지만 북한의 대미 교섭력이 엄청나게 커졌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함북 풍계리의 핵실험장으로 쏠린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해 왔고 또 하나의 핵실험 준비를 장기간 해 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추가적 핵실험도 가능한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어도 6개월 내에 농축우라늄 방식의 핵실험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2호 발사 때는 3개월 만에, 2009년 4월 은하-2호 때는 한 달 뒤 핵실험을 했다. 핵실험에도 성공하면 북한은 핵과 운반수단(ICBM)을 모두 갖춘 ‘깡패국가’로서 힘을 과시하면서 미·중 등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려 할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미·중과 유엔 안보리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다.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권력교체기에 정부는 로켓 발사장 동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북한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던 장담과는 달리 기습적인 발사에 당황하고 있다. 정보수집 역량, 분석 능력, 실전대응 태세 등이 두루 의심받을 정도다. 이 와중에 표몰이에 나선 대선 후보들은 로켓 이슈를 저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핵과 ICBM은 남한이 아닌 미국과의 문제라는 게 북한의 기본 입장이다. 이를 무기로 협상력을 키운 북한은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우리가 점점 ‘당사자능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문영 소장은 “중국과 미국이 모두 반대했는데도 이런 도발을 한 것으로 미뤄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대단히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노선을 걸을 우려가 있다”며 “이는 특히 내년 이후 동아시아의 대결구도를 더욱 가파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대북 특사를 평양에 파견해 북·미 관계 진전을 모색한 미국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우라늄 농축 중단과 식량지원을 연계한 2·29합의도 4월에 이은 추가 로켓 발사로 완전히 종잇장이 됐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첫 출범한 직후인 2009년 4월에도 로켓을 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오바마 2기 정부와의 북·미 대화는 상당기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도 12일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을 통해 “조선(북한)에 유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30일 리젠궈(李建國) 정치국원 등 중국 대표단으로부터 시진핑의 친서를 전달받고 이튿날 로켓 발사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나를 호락호락하게 보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중국 지도부는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안보리가 긴급 소집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도 빨라졌다. 하지만 폭주 기관차와 같은 김정은의 행보를 멈출 실질적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이 “안보리 대응은 신중하고 적절해야 한다”며 한·미와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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