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벼른 「복수」|안두희씨 살해미수… 범인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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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범 김구 선생을 살해했던 안두희(49)씨를 「재크나이프」로 찔러 중태에 빠뜨린 범인 곽태영(29·전북 김제군 진봉면 심포리)은 21일 경찰에 검거된 직후 기자와 만나 『이제는 속이 시원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전 19세 때부터 안씨를 노려왔다』고 말한 곽은 안씨 자상의 동기를 『애국자인 백범 선생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이 원수를 갚기 위해 해마다 백범 선생의 제삿날마다 맹세했다』고 하면서 『아주 죽이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서울 국학 대학 정치과를 나왔다는 곽은 안씨를 『살해하기 전에 칼로 위협, 백범 선생 살해 당시의 정치적 배후를 고백 받아서 만천하에 폭로하려고 했다』고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러나 『안씨를 살해하려던 계획의 배경은 없고 어디까지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세수하려다 뜰에서 봉변>
양구군 양구면 중리 6반에서 6·25때 특사 된 후 10년 전부터 두부·콩나물·콩기름 등을 군납하는 신의 산업 공장을 경영 해 왔던 안씨는 21일 상오 10시30분쯤 공장 뒤에 있는 자기 집 뜰에서 세수하다 행상을 가장하고 들어온 곽한테 돌로 얼굴을 얻어맞은 다음 10센티 가량의 국산「재크나이프」로 오른쪽 귀 위와 턱, 목 등 세 곳을 깊이 찔려 한때 위독했다.
사건 직후 안씨는 양구 읍내 최 의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군에서 제공한 「앰뷸런스」로 이날 밤 춘천 도립 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했으나 23일 하오 현재 혼수 상태에 빠져있다.
안씨는 서울 신설동에 부인과 2남3녀가 사는 본집을 두고 양구읍에서 일선 3개 사단과 수개 독립 부대를 상대로 군납을 해왔는데 지금은 약1천만 원으로 평가되는 공장을 차리고 식모 김 모(52)씨만 두고 살고 있다.

<도망 안 치고>
식모 김씨에 의하면 범인 곽은 사건 전날 양말과 「머플러」등을 싼 행상 차림으로 안씨 집을 찾아와 김씨한테서 안씨 얼굴을 확인했으며 사건 당시도 역시 행상을 가장하고 뜰로 들어왔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식모 김씨가 이날 늦게 일어나 뜰로 나온 안씨에게 세숫물을 떠주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개다 안씨의 비명에 놀라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안씨는 피투성이가 되어 곽과 맞잡고 옥신각신했으며 김씨가 뛰쳐나가 이웃사람을 불러왔을 때도 곽은 도망하지 않고 『나는 원수를 갚았다. 빨리 경찰에 연락하여 나를 잡가라』고 외치다가 출동한 경찰에 두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행상을 가장 이웃에 하숙>
곽은 서울 을지로 5가 오장동에서 세탁소를 하는 누이 집에 기숙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백범일지]를 애독해왔고 백범 선생 기일 때마다 성묘를 하는 등 섬겨 오다가 지난 17일 범행을 결심코 행상을 가장, 양구에 도착했다. 곽은 안씨 집에서 약20미터 떨어진 정만종씨 집에 하숙을 정하고 안씨의 공장에도 찾아와 종업원들에게 1천여 원 어치를 팔며 안씨의 거처를 탐지하는 등 면밀한 계획 하에 범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자 수사관들은 치밀한 사건 계획이기는 하나 『배후는 없고 단독 범행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양구에서 춘천주재 이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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