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

호주, 인종차별 엄중 처벌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샘 제러비치
주한 호주대사

최근 호주 몇몇 도시에서 여러 차례 유감스러운 한국인 폭행사건이 있었다. 지난 5일 밥 카 호주 외무장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 내 언론 보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주한 호주대사로서 이번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다.

 호주 정부는 인종차별에 대해 엄중처벌 원칙이 있다. 1975년 인종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인종차별금지법’이 처음 제정됐다. 호주에서는 누구나 인종차별금지법 또는 95년에 제정된 ‘인종혐오금지법’에 따라 인권위원회에 관련 사항을 제소할 수 있다. 이 제도적 장치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에만 500건이 넘는 인종차별 관련 제소가 인권위원회에서 처리됐다. 호주를 포함해 인종차별이 없는 곳은 없으며 법적·제도적 장치만으로 이를 방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올해 8월에 ‘국가적 인종차별주의 반대 전략’을 발표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번 불미스러운 한국인 폭행사건은 초기수사 결과로 볼 때 우발적 강도 범죄로 보인다. 호주 당국은 그 동기가 무엇이 됐건 간에 이번 폭행사건 가해자를 검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사 결과가 인종차별 범죄로 판명 날 경우 호주 법에 따라 더욱 엄중한 처벌이 가해질 것이다. 관련 사건 모두를 철저히 조사 중이며 이미 다수의 용의자가 구속된 상태다. 본국 및 한국에 있는 호주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존에 한국 유학생들에게 제공되던 유용한 안전정보를 모든 한국인 방문객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호주는 모두를 따뜻하게 포용하는 나라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외국 태생이며 적어도 부모 중 한 명이 외국 태생인 사람이 거의 절반에 달한다. 호주 인구의 12%는 아시아 이민자다. 지난달에 카 외무장관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호주인의 자긍심을 언급했다. 카 장관의 부인 역시 말레이시아에서 인도·중국계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호주에서 훌륭한 경력을 쌓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01년 이후 한국 태생 호주 시민권자는 90% 증가했다. 매년 4000여 명의 한국인이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고 있다. 또한 지난 수년간 한국인 유학생 비율이 전체 유학생 중에서 셋째로 많았으며,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의 경우 둘째로 많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3만 명이 넘는 한국 젊은이가 호주에서 유용한 기술을 익히고 있다.

 자녀를 호주로 유학 보낼까 고려 중인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호주는 여전히 안전한 곳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말씀드린다. 최근 발표된 살인 및 강도사건을 바탕으로 한 치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5개국 중 하나다. 또한 2011년 강도 범죄 신고 비율 조사에서도 OECD 36개국 중 일곱째로 치안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자료를 통해 호주가 안전한 국가임이 증명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범죄는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주에서 외국 태생자들만 범죄 대상이 된다는 추측을 해서는 안 되며 이를 나타내는 증거도 없다. 2011년 8월 호주범죄연구소는 경찰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2005~2009 유학생 범죄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연구를 통해 호주 내 유학생이 다른 평범한 호주인에 비해 폭력 범죄 및 강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더 작거나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맺으며 호주 정부는 이번 한인 폭행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자 한다. 양국의 오랜 우정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며 지금껏 호주를 방문했던 대다수의 한국인이 호주에서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는 점도 계속 기억되기를 바란다.

샘 제러비치 주한 호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