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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회담 일 교체 수석대표|우장신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제 여기까지 와 보니 참 기쁘군요….』 모진 진통과 희비가 엇갈린 여운과 함께 한·일 조약 비준서가 교환되는 날 아침 우장신언(우시바·노부히꼬) 일본 외무성 심의관은 우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장씨는 일본 외무성의 사무 관료로서 열성적으로 한·일 문제를 다루어온 사무「레벨」의 실력자다.
찌푸린 날씨의 18일 이른 아침 비준서 교환식에 나가기에 앞서 그의 감상은 착잡한 듯 했다.
『정상화라는 말이 뜻하는 대로 당연히 해야할 일을 우리는 했지만 한국 내 일부에 일본의 경제침략을 우려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아서도 일본측이 양국이 공존공형 하는 방향으로 진정한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큰 문제』라고 그는 말을 계속한다.
양국의 현안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하고 또 장차의 「공영」을 가름하는 것이 무역관계이고 양국간의 무역역조의 시정을 요구하는 문제가 다루어진 무역회담이 또 이날 사흘 동안의 회의를 끝맺었다.
이 회담에 일본측 교체 수석대표였던 우장씨는 구체적인 수확이 없었던 고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의 일차상품의 수입 할당이 일본의 국내 사정으로 보아 시기적으로 늦은데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일본정부 각 관계성의 실무 대표자들이 이번 무역 회담에 참가하여 실정을 서로 이해했으며 따라서 장차의 교섭 전망은 밝다고 강조하는 것은 있지 않았지만.
후리후리한 체구의 57세의 우장씨는 동경대학 재학 때 이름난 수재였다. 학교를 나와 30여 년을 직업 외교관으로 자라온 그는 일본 외무성에서 원숙한 인격자로서 부하들의 신망의 대상이 되어 있다. 특히 상대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아세아의 공형을 그의 소신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구미 각지 등 해외공관 근무를 끝내고 본성으로 돌아오기 전엔 「캐나다」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현재 외무성의 제 3인자로 활약하고 있다.
야당 일부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했고「데모」를 벌일 계획이라는 소식에「한국 민의 일부가 국교재개를 반대하는 것과 일본 야당의 반대에는 엄청난 차가 있고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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