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조용한 업무 스타일의 민생 총리로 다가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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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상우(王左相右)의 재림.’

최근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지난달 출범한 시진핑(習近平)-리커창(李克强) 시대의 특징을 좌경보수 성향의 공산당 최고지도자와 우경개방 성향의 정부수반으로 해석했다. 리커창은 미래 10년 중국 경제를 책임진다. 현재 중국은 경제발전 방식을 전환하는 체제 개혁의 마지노선에 서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경제 정책 결정이 중요한 시기다. 경제 조타수 리커창의 국정운영 능력과 경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일부 언론은 리커창의 경제 운영 능력과 정책 추진력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권위가 부족하며, 경제현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리커창은 내륙과 동북지역에서의 풍부한 지방 행정경험을 갖고 있고, 유창한 영어실력과 서구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기존의 평가가 단편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州週刊)’은 최근호에서 허난(河南)성과 랴오닝(遼寧)성에서의 경제 실적과 민생 중시 스타일을 분석해 ‘민생총리’의 등장을 예고했다.

리커창은 1998년에서 2004년까지 인구 1억의 허난성의 1인자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사회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수혈로 에이즈 감염자가 급속히 확산되자 6년 동안 100여 개 마을을 찾아 다니며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불법매혈을 금지시키고 성내에 200명의 간부와 의사를 파견해 에이즈 감염자를 줄여나갔다.

경제는 ‘중원굴기(中原?起)’를 내세워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중서부 내륙지역에 위치한 허난성은 대표적인 농업생산지로 농촌인구가 25%를 차지하는 농업대성이다. 그는 공업화?도시화?농업현대화 전략을 실시해 일거리가 없는 농촌 노동력을 흡수했다. 1990년대 초반 1인당 국민총생산 28위에 불과하던 허난을 2004년에는 중서부 GDP 1위로 만들었다. 또, 1998년 4643위안이던 1인당 GDP 를 2004년 9470위안으로 6년 만에 2배로 배가시켰다. 리커창이 떠난 뒤에도 허난성은 농촌공업화로 지역 경쟁력을 강화,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평균 GDP 성장률 10%라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리커창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동북의 랴오닝성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랴오닝은 낙후된 중화학공업지역으로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동북진흥계획(振興東北)’을 제창, 빈민촌 재개발과 경제성장률 제고를 중점 추진했다. 1995년에 시작됐음에도 진척이 없던 빈민촌 재개발사업을 국유상업은행의 자본을 끌어들여 자금문제를 해결해 2년만에 끝냈다. 100만 명에게 서민공공주택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찾아줬다. 국유기업 개혁으로 실직한 노동자들의 취업문제도 해결했다

허난에서와 마찬가지로 빠른 경제 성장률을 이뤘다. 2006년 GDP 성장률은 13.6%, 재정수입 가운데 지방예산 수입은 21% 상승했다. 2006년 외상투자액은 66%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0%가 넘는 수치였다. 한편 보하이만(渤海) 일대를 집중 개발하는 ‘5점1선’사업을 완성시켰다. 이를 통해 동북지역의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랴오닝성의 대내외적 경제성장과 취업문제 해결을 통해 성장과 민생의 조화를 이뤄냈다.

랴오닝성을 떠나 중앙에 진출한 이후 5년간 그는 거시경제, 보장성 주택건설, 의료보험, 식품안전, 약품안정 등 민생과 직접적 연관된 안건들을 다뤘다. 18차 당대회의 정치보고 기조는 전면적인 소강사회건설, 민생중시, 국민수입 배증계획 등이다. 그가 직접 체험한 민생문제에 대한 관심이 모두 들어있다. 경제 성장만큼 민생 안정을 중요시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그는 왕양(汪洋)의 ‘새장을 들어 새를 바꾼다(騰籠換鳥?등롱환조)’나 보시라이(薄熙來)의 ‘파이나누기(分蛋?)’처럼 자신만의 경제정책에 트레이드 마크는 없다. 리커창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조용하지만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作風低調 行事高效)’ 정치인이다. 중국 경제가 당면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역량과 경험을 갖춘 인물이다. 중국 경제의 체질과 구조 개선에서 그의 경제 정책과 운영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홍두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doo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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