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게라도 맞히지 … “올해 성장률 4%” 외친 분들 어디 계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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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상저하고(上低下高)가 아니라 상저하추(上低下墜)였다. 3%대 중반은 고사하고 2%대 안착도 아슬아슬하다. 올 경제성장률 얘기다. 지난해 말 국내외 금융회사와 연구기관이 내놓은 올 성장률 전망이 이 정도로 크게 어긋났다.

경제 예측에 필요한 정보력이 부족하고, 비관적인 경제 전망이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위기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말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투자은행(IB), 경제연구기관은 한목소리로 “2012년 한국 경제는 3%대 중반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낮게 잡은 것도 3.0%(SK증권·노무라증권)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우리투자증권·현대증권(각 4.1%)과 현대경제연구원(4.0%)은 4%대의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경제성장률과 증시가 상반기엔 약세지만 하반기엔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상저하고론’도 천편일률적이었다. 결과는 반대였다. 전년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1분기 2.8%를 기록한 후 줄곧 하락, 3분기엔 1.5%에 그쳤다. 코스피 지수 역시 1분기 말인 3월에 올 최고점(2057.3)을 기록한 뒤 7월엔 연중 최저점(1769.0)을 찍었다. 한국은행이 10월에 수정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2.4%)도 달성하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경제 예측 대부분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가 유난히 불확실성이 심했던 해라고 해명한다. 지난해 말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가 다시 불거진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던 상황. 특히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경제위기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까지 번질 줄은 전문가도 예상하기 힘들었다는 해명이다. 신운 한국은행 조사국장은 “지난해 말만 해도 유럽 경제가 올해 안엔 회복될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다”며 “위기가 이 정도로 장기화할지, 중국으로까지 여파가 미칠지 등은 미처 내다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관의 경우 해외 경제동향에 대한 정보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외국계 투자은행 8곳의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치(3.4%)는 국내 증권사 8곳의 평균치(3.7%)나 국내 연구소·기관의 평균치(3.7%)보다 현실에 더 가까웠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외국계 금융사의 경우 세계 경제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순환되니 유럽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국내 금융사보다) 더 강하게 체감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관적인 경제 전망이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위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으면 각계에서 ‘불안감을 조성한다’ ‘소비심리를 악화시킨다’며 비난을 받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낙관적인 전망치를 내놓는 걸 마음 편히 여긴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최근 한국은행이 제시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3.2%) 역시 다소 낙관적으로 계산됐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며 “정부와 국민이 경제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경제학자들이 소신 있게 의견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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