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튀니지 다시 혼돈 … 험난한 아랍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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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7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파라오 헌법’ 추진에 반대해 카이로 대통령궁 앞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진압 군인들이 탱크 위에 올라서서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다. [카이로 AP=연합뉴스]

민주화의 꿈을 염원한 ‘아랍의 봄’은 결국 실험으로 그칠 것인가. 2010년 말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새 정부가 들어선 이들 지역이 경제난과 또 다른 독재 시도, 이념 대립으로 또다시 내홍을 겪고 있다. 성공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받았던 튀니지와 이집트는 최근 잇따른 반정부 폭동에 시달리며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독재를 재연한다는 반정부 유혈시위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무르시는 지난달 22일 사법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고 대통령의 법령과 선언문이 최종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내용의 새 헌법, 일명 ‘현대판 파라오 헌법’을 발표했다. 친정부와 반정부 세력 간 격렬한 충돌이 벌어져 지금까지 7명이 숨지고 1000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정부는 9일 헌법 선언문을 폐기했으나 15일로 잡힌 새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예정대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측은 “헌법 선언문 폐기 선언은 면피용”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시위 열기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자 정부는 군부대를 시위 진압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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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의 봄 발화지인 튀니지의 최대 노조 튀니지노동총동맹은 오는 13일 총파업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총파업은 혁명 후에도 경제난이 해결되지 않는 데 불만을 품은 국민이 지난주 이슬람 정부를 대상으로 벌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연장선이다. 튀니지의 시민혁명은 2010년 12월 17일 일자리가 없어 과일 노점상을 하던 청년이 경찰의 과잉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한 데서 촉발됐다. 그러나 튀니지의 서민 경제난은 혁명 후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 튀니지의 실업률은 13%에서 18%로 올랐다. 물가상승률도 3%에서 5.5%로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관광이 기간산업인 이집트의 경우 올해 5월 현재 관광객은 2년 전 대비 32% 급감했다. 사회불안으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년간 내전으로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에서는 최근 화학무기 살포 위기 등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다. 리비아에서는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 및 대사 피살사건에서 보듯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조직들이 이미 뿌리를 내린 상태다. 예멘은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이 축출됐지만 샤리아를 엄격히 따르는 기존 법체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이슬람 세력이 힘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 외신들은 “아랍의 정신을 둘러싼 포스트 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9일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옵서버 단체’에서 ‘옵서버 국가’로 승격시킨 것도 중동 지역의 역학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위축되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뉴욕타임스는 “요르단과 쿠웨이트 같은 친미 국가들까지 사회 혼란이 가중될 경우 중동 지역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미 영사관 테러 배후 인물 체포=이집트 당국은 지난 9월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 테러의 배후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을 체포했다고 8일 밝혔다. 자말 아부 아마드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이슬람주의 과격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복역하던 중 무바라크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석방됐다. 이후 알카에다의 새로운 분파를 조직하던 중 테러를 단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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