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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NPT 탈퇴 파장] 초강수 선택 배경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무엇보다 국제적인 핵 통제의 틀을 벗어 던지겠다는 의도다. 지난해 12월 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에 이어 국제기구나 협약이 무용지물로 되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를 통해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양자 간에 협상을 통해 담판지어야 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이 북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까지 회부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핵카드를 내세워 체제보장이란 생존권을 확보하고 지난해 12월 중단된 대북 중유(重油) 지원 재개 같은 경제적 실리까지 거머쥐려는 북한의 절박감은 탈퇴 성명 곳곳에서 감지된다.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데 대한 우리의 마지막 노력까지 외면하고 끝끝내 조약 탈퇴에로 떠민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며 미국과 IAEA를 비난하는 대목에서는 결사항전의 의지까지 보인다. 그동안 외무성이나 관영 통신을 동원하던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정부 성명'이란 형식을 취한 데서도 이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일부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실제 이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결심한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진단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 성명의 행간 곳곳에 북.미 대화를 바란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격앙된 성명의 말미에 정작 북한의 진의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당국자는 "부시 행정부의 '대화 가능성'시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대북 불가침 보장 용의 표명을 미국의 시간끌기 의도로 판단한 듯하다"며 "미국이 이라크 문제를 완전히 매듭지은 후에나 북.미 간 대화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명 내용 중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조.미 사이의 별도의 검증을 통해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은 북.미 양자 간의 대화채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이를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이려는 시각도 제기한다.

그러나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을 놓고 오히려 '경우에 따라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결국 북한은 1993년 3월 첫 탈퇴 선언 이후 '탈퇴 유보'상태에 있는 이른바 특수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이런 벼랑 끝 전술에 녹록하게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자칫 북한이 예측못한 위기상황을 초래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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