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사드, 독성물질 백린 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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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야권에서 정부군 헬기가 유독성 화학물질 백린을 뿌리고 있다며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동영상 캡처]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시리아군이 유독성 화학물질 백린(白燐)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백린은 대규모 살상이 가능한 위험 물질이지만 국제조약상 금지된 화학무기에 속하지는 않는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시리아 야권에서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소개하며 시리아 정부군 헬리콥터가 백린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금속 용기를 떨어뜨리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동부 데이르 알주르주의 한 마을에서 찍혔다고 설명된 동영상에는 고공에서 비행하던 군 헬리콥터가 하얀 백색 연기를 뿜으며 조각으로 폭발하듯 흩어지는 물질을 뿌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백린은 인의 동소체 가운데 하나로 소이탄 등의 원료로 쓰인다. 피부에 닿으면 심한 화상을 유발하고, 연기를 많이 흡입할 경우에는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산소와 만나 하얀 연기를 생성하기 때문에 군에서 이동 시 연막으로 사용하곤 한다.

 백린을 화학무기로 분류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는 논란이 많다는 것이 WP의 설명이다. 유엔의 화학무기금지조약(CWC)은 인간이나 동물에게 사망이나 영구적인 손상을 유발하는 물질을 독성 화학물질, 즉 화학무기로 규정하고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백린은 이에 속하지 않는다. 미국은 2004년 이라크전 때 팔루자에서 저항 세력 소탕에 백린을 사용해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알아사드가 국제사회가 경고한 ‘레드 라인’은 넘지 않으면서 화학무기에 준하는 유독 물질을 사용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서방 세계에 맞서 시리아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러시아의 기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 대표 블라디미르 바질리예프가 “우리는 시리아의 현정부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해 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현정부가 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바질리예프는 푸틴의 최측근인 데다 이 발언은 러시아가 이제껏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표시한 우려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것이라 주목된다.

 러시아의 태도 변화는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라흐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특사가 모인 데서도 감지됐다. 미 CBS 방송은 “러시아는 알아사드가 내전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믿고 있다”며 “러시아는 정권이 붕괴되거나 알아사드가 화학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경우에도 시리아에 대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어 한다”고 보도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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