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스쿨 수석 이동환, "필드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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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이었던 제임스 네스메스는 베트남군에 포로로 잡혔다. 감옥에 갇힌 그는 공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네스메스는 고통의 순간들을 스스로 잊게 하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아마추어 골퍼였던 그는 매일 독방에서 눈을 감고 18번 홀짜리 골프 라운드를 하는 상상을 했다. 실제로 눈 앞에 보이는 건 차가운 벽 뿐이었지만 상상 속에서는 고향에 있는 필드를 누비고 있었다. 10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향으로 살아 돌아온 네스메스는 매일 머릿 속에 떠올린 그 골프장에서 74타란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90대 타수를 기록했던 아마추어 골퍼가 연습 한번 없이 이미지 트레이닝만으로 거둔 기적이었다.

1975년 직 자글라가 펴낸 [리더들의 성공적인 삶]에 실린 내용이다. 베트남 전쟁 때의 실화다.

이동환(25·CJ오쇼핑)도 이 방법을 썼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퀄리파잉스쿨(Q스쿨)에 수석 합격한 이동환은 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그는 귀국 인터뷰에서 우승 요인을 묻자 "끈질긴 집중력 때문이었다. 6일이나 경기를 하면서 체력이 달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미리 경험해 본 것처럼 능숙히 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동환은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난 골프 코치 송삼섭씨에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배웠다. 송씨는 이동환을 앉혀 놓고 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바람의 세기와 방향, 해저드의 위치, 러프 길이, 그린 상태, 몸 컨디션 등을 설정해 줬다. 이동환은 눈을 감고 경기를 상상하면서 상황을 말로 설명했다. 심지어 함께 라운드를 도는 동반자들이 누구이고 어떤 대화를 하는지까지 자세히 상상했다.

Q스쿨을 앞두고도 이동환은 송씨를 찾아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4~5시간 동안 눈을 감고 떠드는 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미친 놈들'이라며 "그래서 Q스쿨 통과가 되냐"고 웃었다. 하지만 이 '미친 상상력'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동환은 6일간 108홀을 도는 '지옥의 레이스'에서 25타를 줄이며 정상에 섰다.

고비도 있었다. 4라운드까지 단독 선두에 올랐었지만 5일째 되는 날 체력이 떨어지면서 공동 6위로 내려앉았다. 이 때부터 미친 상상력의 위력이 발휘됐다. 이동환은 스스로에게 "힘든 거 해 봤잖아. 여기서 많이 해 봤잖아"라고 다독이며 자신있게 샷을 휘둘렀다. 결국 이동환은 마지막 날 5타를 줄이며 한국인 최초로 Q스쿨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이동환은 "어릴 때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이 큰 도움이 됐다. 일본에서 뛸 때도 그랬고 군 복무를 하느라 연습을 못 할 때도 혼자 라운드를 돈다고 상상하면 신기하게 골프 치는 감각이 유지됐다"고 말했다.

이동환은 내년 1월 하와이에서 개막하는 소니 오픈을 PGA 투어 데뷔전으로 치를 계획이다. 그의 목표는 한국인 최초의 PGA 투어 신인왕 등극이다. 이동환은 "최경주 선배가 다양한 구질의 아이언 샷을 꼭 익히라고 조언해 줬다. 드라이브 샷은 비거리가 285야드(260m) 정도여서 더 늘려야 한다"며 "남은 기간 동안 준비를 잘 해서 첫 단추를 잘 채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천공항=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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