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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리그 나눠 승강제 하는 울산에, 미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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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형 디비전 시스템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좌우할 키워드다. 내년 1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11월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K-리그 경기. [중앙포토]

프로축구 K-리그 울산 현대의 허진영(29) 홍보팀장은 주말마다 축구화를 신는다. 그는 울산 지역 아마추어 축구인들이 만든 ‘울산리그’의 2부리그 클럽 ‘FC 제로’ 소속이다. 허 팀장은 공구상가 상인들이 주축이 된 FC 제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울산리그는 2001년 태동 이후 꾸준히 참가팀을 늘리며 성장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승강제를 포함해 4단계(1부·2부A·2부B·3부 모두 45팀)의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했다. 유럽 프로리그처럼 8월 말 개막해 이듬해 6월까지 시즌을 진행한다. 선수 개개인의 기록을 보관할 뿐만 아니라 선수 등록기간과 이적 허용기간까지 두는 등 프로 못지않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울산에는 20대 청년들이 주축이 된 울산축구클럽리그도 있다. 57개 팀이 5부리그 디비전 시스템으로 시즌을 치른다. 116만 명이 사는 울산에 승강 시스템을 갖춘 아마추어리그가 2개나 있는 셈이다. 허 팀장은 “우리나라 클럽축구 전체를 아우르는 디비전 시스템이 갖춰지면 FC 제로를 포함해 울산의 아마추어 축구팀들이 앞다퉈 참여할 것”이라며 “FA컵 무대에서 울산의 지역 라이벌인 포항 스틸러스와 맞대결하는 꿈을 꾼다”며 웃었다.

 ◆꿈★이 이뤄지려면

우선 대한축구협회의 지방 분권화가 필수적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 시스템이 지나치게 엘리트 위주로 짜여 있다고 입을 모은다. 축구협회의 행정력이 4부리그 격인 챌린저스리그 이상 클럽들에만 미치다 보니 조기축구회 등 풀뿌리 축구를 제대로 끌어안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의 예산과 권한 중 상당 부분을 시·도축구협회로 이양해 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일축구협회는 연간 예산 1억7000만 유로(약 2500억원) 중 약 4분의 1인 4000만 유로(566억원)를 지역축구협회에 배정해 풀뿌리 축구 관리에 쓴다. 일본축구협회도 선수 한 명당 3000엔(약 3만9000원)씩 받는 등록비 27억7000만 엔(약 364억원)을 매년 전액 지방축구협회로 돌려주고 있다.

 한국 축구가 디비전 시스템을 완성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도 적잖다. 축구와 관련한 일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축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선수층도 탄탄해진다. 축구 선진국의 경우 운영비가 넉넉지 않은 하부리그 팀일수록 이적료 수입을 기대하며 젊은 유망주 위주로 선수단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흙 속의 진주’가 탄생한다.

 나카니시 다이스케 일본 J-리그 이사는 박지성(31·퀸스파크 레인저스)을 일본 축구 디비전 시스템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그는 “박지성의 전 소속팀 교토 퍼플 상가(현 교토 상가)가 1부에 있을 때 박지성은 유망주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토가 2부리그로 강등되면서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자 비로소 박지성에게 기회가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엘리트-생활축구 통합이 급선무

지난 3월 열린 울산축구클럽리그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울산축구클럽리그]

둘로 갈라진 한국 축구의 관리 주체를 통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각급 대표팀을 비롯한 엘리트 축구는 대한축구협회가, 조기축구회와 동아리 리그 등 풀뿌리 축구는 전국생활축구연합회가 관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와 생활축구연합회 실무진은 “조직 통합이 어렵다면 클럽축구 부문만이라도 연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효중 생활축구연합회 사업부장은 “5000개가 넘는 조기축구팀 중에는 소속 직장의 지원을 받아 챌린저스리그 수준(연간 5억원 안팎)의 운영비를 쓰는 팀도 많다”며 “5부리그 이하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리그를 관리하는 박윤동 울산축구협회 부회장도 “울산 아마추어리그 1~3부가 권역별 리그로 형태만 바꾸면 자연스럽게 5~7부리그가 탄생한다” 고 강조했다. 내년 1월 대한축구협회장이 새로 뽑힌다. 새 회장의 의지와 결단이 있다면 한국형 디비전 시스템은 당장이라도 닻을 올릴 수 있다.

송지훈·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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