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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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문에 따라,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이 두가지로 표기돼 나와서 개운치 않은 일이 있다. 문교부에서 청한 외국의 고유 명사 표기법을 따르는 신문이 있고, 대체로 따르면서도 어떤 특정한 소리의 표기만은 자기류를 고집하는 편집자가 있다. 그런 소리의 하나가 소위 「th」음.
이 소리에는 영어 「This」의 유성음이 있고, 요즘 갑자기 악명이 높아진 「Smith」의 무성음이 있는데, 문제는 이 두가지 소리를 「ㄷ」으로 꼭 같이 적어야 한데서 생긴 것이다. 그래서 「스미드」가 되고, 「스미드」는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스미스」로 써야겠다고 버티는 측이 생기는 것이다.
고유 명사뿐 아니라 모든 외래어를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분명한 일본색을 없애자는 주장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세멘또」·「스토라이끼」·「도란스」·「에찌껫또」·「테레비」하는 따위는 구태여 일본식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발음 기관과 한글을 쓰면 원어에 보다 가까운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불가이다.
그러나 「스미드」·「드릴」·「드로잉」·「프리·드로」하는 것이 왜색을 청산하고 우리의 주체성을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미스」·「스릴」·「스로잉」·「후리·스로」하면 곧 그 속에서 「게다」 소리의 반향을 듣는 초 애국적 청각의 소지자가 얼마나 있을까. 문제의 무성음을 「ㅅ」로 표기하면, 유성음은 어떻게 표기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무성의 두가지 소리를 도매금새로 「ㄷ」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에는 분명히 어떤 통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통일된 표기법이 이해에 지장을 주거나 사용자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그 표기법의 근거가 되는 음성학적 이론이 재검토돼야되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언어 생활 자체가 지극히 규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진리를 되새겨야한다.
이 넋두리는 물론 「로디지아」의 「스미드」인가, 「스미스」인가하는 인물에 대한 노여움 때문에 시작된 것이지만, 얘기가 외래어 표기법에 이르면 그저 덮어둘 수 없는 또 하나의 불평이 있다. 그것은 「아르헨티나」·「메히코」·「쿠바」 하는 따위의 표기법. 아, 통일에의 열망이여! 원칙의 승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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