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국에 돌아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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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혁주란 작가를 나는 과거에 한번 만난 일이 있다. 해방 이태전인가, 매일 신보 동경지사에 전보로 불려 갔던 날 이정순씨의 소개로 그 지사 문간에서 선양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같이 앉은 적은 없었고, 얼굴을 대한 것도 시간으로 따져서 채 1분이 못 됐을 것이다.
그런 연분인데도 「일본글」을 쓴다는 연상에서인지 남들은 일쑤 나를 그와 친한 사이로 오인한다. 특히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내 얼굴만 보면 「조가꾸쭈」를 들먹이는 이가 흔히 있다.
여기다 무슨 인물지를 쓰자는 것은 아니나, 내 관심에 있는 그를 두고 몇 줄을 적어 두어야겠다.
그가 「개조」의 당선작가로 이름을 내민 5, 6년 후이다. 그와 한 고향인 대구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장혁주의 험담을 내놓았다. 잘난 주제에 제집에다 「집필 중 면회사절」이라고 써 붙였느니, 아―죠 어깨를 치켜들고 길을 다닌다니―그런 류의 험담들이다. 좌중의 몇몇도 그 험담에 한마디씩 거든다.
들을 만큼 듣다가 내가 입을 떼었다.
『그게 무슨 소리들이오. 남이야 길을 어떻게 걸었거나 그건 그 사람의 버릇일 뿐이오. 다른 직업과 달라 글쓰는 자리가 이를테면 그 사람의 공장이고「스튜디오」가 아니오. 면회사절을 해야 할 경우도 있겠지요. 남을 비판하려거든 그 사람의 작품이라거나 그 작품에 나타난 그 사람의 생각―그런 것을 비판할거지. 행여 그런 쓸데없는 소리들은 마시오.』
나는 그 변호료로 그에게서 다잔 대접받은 일이 없다. 해방된 지 얼마 못 가서 기차 속에 마주 앉은 이가 일본잡지「킹」을 읽고 있다가 내게 빌려주었다. 아마 나와 마주앉은 이는 일본서 갓 돌아온 귀환 동포인가 싶다.
그 「킹」속에 장혁주란 이름이 있다. 그때는 아직도 「노구찌 가꾸쭈」는 아니었다.
그가 쓴 글을 몇 줄 읽어가다가 어느 한 귀절에서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와레 와레 닛본노 분각 샤와―』(우리들 일본의 문학자는)― 일본글을 쓰니 「일본의 문학자란 말도 빈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의「액센트」는 「일본의 문학자」에가 아니고 「우리들 일본의―」란 구절에 걸쳐져 있다.
조국이 명색 해방되었다는 직후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그 장혁주란 작가의 심리상태를 두고 나는 별별 해석을 해보았다. 또 글을 읽는 일본인의 심리에도 상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적 무국적자인이 작가의 발언을 일본인은 기특하고 갸륵하다고 할 것인가, 경멸할 것인가―.
구역질나는 그 인상을 지워보려고 전후에 그가 쓴 단편 몇 개를 동경서 읽어 본 일이 있다. 지워지기는커녕 이제는 그 사람이 그지없이 불쌍해졌다. 내가 읽은 단편 중에 이런 대문이 있다.
―밤중인데 또 문을 두드린다. 필시 그 「조센진」이다. 망할 자식, 누가 열어주나 봐라. 나는 이불을 둘러쓰고 귀를 막았다.
분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5분 10―분 그래도 가지 않고 자꾸만 문을 두드린다. 참다못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열었다. 그 「조센진」이 아니었다.―【김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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