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이 있는 풍경] 연극인 김금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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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과나 배.쌀 등 농산물 하나하나에도 가꾼 사람의 이름이 박혀 있습니다. 실명제죠. '탈 나면 나한테 따져라' 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그래서인지 당당히 이름을 박은 이런 상품을 보면 믿음이 갑니다.

연극에도 실명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나 봅니다.

1960~80년대 '리마이 배우' (주연배우를 뜻하는 일본식 표현으로 연극계의 오래된 은어) 로 이름을 날린 김금지(60) 씨가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따 극단을 만들었지요. '극단 김금지' .

이런 극단 실명제는 김씨가 처음은 아닙니다.

유인촌이 자신이 성(姓) 을 앞세운 '극단 유' 를 만들어 비슷한 시발점을 보였고, 마임이스트로 대중적인 지명도가 있는 김동수는 아예 '김동수 컴퍼니' 로 이름을 박아 출발했습니다.

이런 선례가 있는데도 극단 실명제는 왠지 낯설고 '건방져'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김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채소도 농부의 이름을 밝히면 값도 비싸고 소비자에게도 신뢰를 준다. "

그렇습니다. 김씨는 이런 각오로 40년 연극 인생을 자신의 극단에 걸고 '제2의 인생' 을 시작합니다. 19일 출발 총성이 울리면 '극단 김금지' 라고 쓴 가슴패를 달고, 1백m든 장거리 마라톤이든 줄달음칠 것입니다. 물론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마라톤이면 좋겠습니다.

창단 기념 작품은 '다섯 하늘과 네 구름 동안의 이별' (19일~10월 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762-0810) 입니다. 김씨가 직접 썼습니다.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낸 문학소녀 출신답게 꽤나 시적인 제목입니다. 숙부 수양대군(세조) 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단종의 애사(哀史) 가 모티브입니다.

혹시 자신의 극단이니 맘대로 주연을 하지 않을까요. "천만의 말씀이다. 내 극단에 내가 출연하는 일은 없을 터. 끼 있는 신인 배우나 연출자가 있으면 업어 데려와서라도 무대를 열어주겠다. 주인공은 여한이 없이 해봤다. "

사실입니다. 김씨에겐 현재의 '스타 트리오' 인 박정자.손숙.윤석화가 득세하기 이전, 국립극단.극단 자유 등에서 폼나는 역을 도맡아 해온 시대가 있었습니다. 극단 주인 김금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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