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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논단] 제한적인 중국의 대북 영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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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적극 중재해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중국이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돼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하면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직접 원조를 중단하고, 김일성(金日成) 우상화도 비난했다. 때문에 두 나라의 관계는 어색해졌다. 북한은 중국을 "자본주의라는 사탕발림에 속아 사회주의를 버린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양국 관계는 92년 중국과 한국이 국교를 수립하면서 더욱 경색됐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점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중국식 개혁을 도입하라"고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할 때까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북한 핵 위기의 파장을 우려하는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기를 바란다. 문제는 중국이 북.미 대화를 중재할 만한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구호기관들은 중국이 지난해 북한에 '공짜로' 식량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94년 중국이 '특별 가격에 의한 곡물 수출'을 중단하자 북한은 자존심도 버린 채 유엔에 긴급 식량원조를 요청했었다.

중국은 원조보다 북한경제 개방에 관심이 있다. 그래야 한반도와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를 만들어 뒤떨어진 동북지역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더딘 변화에 실망한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 평양행 항공 노선을 취소하고 민간 차관 제공도 끊었다. 또 양국 국경선의 통행을 차단하고, 화물차 출입도 금지시켰다.

만주에서 교육받은 김일성은 중국어를 했고 중국 공산당 당원도 했었다. 중국 지도부와 개인적 친분도 가졌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정일(金正日)은 중국 지도부와 그런 유대를 갖고 있지 못하다.

김정일은 80년대에 반중(反中) 감정을 부추기며 북한 노동당 내 친중파(親中派)들을 숙청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이나 마찬가지로 장막에 가려진 북한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것이다.

중국은 김정일이 경제를 책임진 80년 이후 북한 경제가 엉망이 돼 가는 것을 지켜봤다. 김정일의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無知) 등은 나진.선봉 경제특구의 운명을 어둡게 만들었다.

야심작 신의주 특구사업을 벌이면서 장관에 양빈(楊濱)을 임명한 것도 중국을 화나게 만들었다. 양빈이 장관 임명 발표 후 세금 포탈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된 게 그것을 보여준다.

김정일에 대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이 북한 정권 교체를 초래할 정책을 펴는 데는 반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철회하기를 바라면서도 북한이 독립된 나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보증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김정일의 핵 야망과 속임수를 비난하기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의 대북 화해정책을 포기해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했다고 비판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화해 노선을 견지한 클린턴 정부와 같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정리=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