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 미사일과 한반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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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북한은 김정일 유훈이라며 다시 장거리 로켓 발사에 나섰다. 대당 2억 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장거리 로켓을 1년에 두 차례나 실험발사하는 이례적 행보다. 김정일 유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김정일 유훈이자 김일성의 꿈이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개입으로 적화 통일에 실패했던 김일성은 1965년 특수무기 제조를 위한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함흥군사학원 개원 연설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다시 미국과 일본이 개입할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의 심장을 겨누는 장거리 로켓부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북한은 이미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괌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수단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얼마 전 개정된 헌법전문에 핵무기 보유국가이며 그것이 김정일의 업적임을 명시한 바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실전 배치다. 김정일은 냉전 붕괴 이후 독일에서의 흡수통일과 함께 소련·중국이 한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고 남북 경제격차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핵미사일만이 자신의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을 굳혀 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100만 단위의 주민이 굶어 죽는 가운데도 민생경제를 희생하면서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천문학적 투자를 일관되게 이어갔다. 강성대국 원년인 2012년에 그 결과를 얻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완성을 코앞에 두고 사망했다. 결국 그 목표는 김정일 유훈으로 김정은에게 남겨졌다.

 북한 정책담당자들은 현 시점에서 로켓을 발사할 경우 상당한 불이익이 있다는 점을 잘 알 것이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 출범에 맞추어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을 감행했지만 오히려 미국의 대북입장을 경색시켜 이익을 얻지 못했다. 다시 로켓을 쏠 경우 2기 오바마 정부의 입장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더욱 경색될 것이다.

 이 점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시진핑(習近平)의 특사가 김정은에게 친서를 전달한 직후 하루 만에 북한은 발사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었다. 특히 대남관계에도 부정적이다. 한국 대선에서는 유력 여야 후보 모두 전향적인 대북 노선을 표방하지만 발사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의 창’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 김정일 유훈은 대미·대중·대남관계보다 최우선시되는 사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체제는 표면적으로 일사불란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핵심권력층 내부의 복잡한 갈등도 목격된다. 김정일의 장례차를 호송했던 4명의 핵심 장군들이 불과 1년 만에 모두 해임·좌천되었다. 김정은을 비롯해 누구도 내부 경쟁이 심화할수록 김정일의 유훈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 유훈으로 규정된 이상 누구도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할 것이다.

 북한 내부상황과 맞물려 북핵 문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연중 한두 차례 핵·미사일 실험이 상시화하고 있다.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고 점점 익숙해지는 경향이 우리에게 대두된다. 비핵화를 이야기하면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 본토에 접근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한반도의 중대한 위기 국면을 초래할 위험성을 갖는다. 당장 이번 실험발사에서 그러한 능력이 입증된다면 한반도 긴장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우리 차기정부는 물론 미국의 2기 오바마 정부, 중국 시진핑 신정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신정부, 그리고 일본 차기정부에도 첫 외교적 시련이 될 것이다. 한·미·중·일·러 5개국 신정부들의 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윤 덕 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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