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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민주주의의 위기|[16분지1 국회의원]의 출현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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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1·9보선이 끝났다. 5개 선거구중 민중당이 3석을, 한독당과 정민회가 각기 1석을 차지했다. 이번 선거에 있어서 투표율은 평균하여 26%강, 서대문을구 같은 데서는 21%미달로 우리 나라 선거사상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유권자의 불과 4분의1만이 투표하고 유권자 총수의 4분의1의 지지로 당선자를 낸 이번 선거에 있어서는 누가 당선되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고 하면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제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의 여부부터가 문제로 된다.
우리는 이번 보선이 대의정치제도 파탄 내지 종언의 징조를 나타내게 된 것을 슬퍼하면서 유권대중이 선거에 외면한 원인과 그 의미를 캐고 앞으로 대의 민주정치제도를 공고히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를 여기 논하기로 한다.
이번 보선이 선거사상 최저의 투표기록을 남긴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는 바로서는 거기에는 기본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두 가지가있는 것 같다. 그 기본적인 원인의 하나는 정치위기가 조성되면 국회가 정치권외로 전락하는 정치부재상황의 노출이 대중으로 하여금 [국회란 과연 필요한 존재인가]를 근본적으로 의심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둘째는 현재 양당정치의 기간을 이루고있는 공화당도 민중당도 함께 국민의 불신을 사고있는데 국회의원의 각가지 부패추문은 국회로 하여금 민중의 불신만이 아니라 실로 멸시·증오의 대상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시적인 원인의 하나로서는 이번 보선이란 공화당과 민중당온건파와 민중당강경파의 삼파전이 되는 경우에라야만 참다운 선거경쟁의 의의를 띨 수 있는 것인데 공화당은 보선을 포기했고 민중당강경파는 입후보자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또 내세울 수도 없었으므로 유권대중이 정당과 인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은 매우 협소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둘째는 국회의원을 사퇴한 당사자들의 불출마가 도의적인 면에서 국민으로 하여금 보궐선거를 멸시케 했다는 것이다. 남이 국가를 위해서 최선의 길임을 확신하고 내놓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나와서 경쟁을 벌이므로 다소라도 지각 있는 국민은 애초부터 더럽다고 하여 모두 기권하고 한 것이다.
위에 지적한 원인 중 일시적인 것은 이번 보선에만 특이하게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지면 신속히 제거될 수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것은 그 유래가 뿌리 깊은 것이기 때문에 좀처럼은 제거되지 않는다. 국회란 과연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데 관한 근본적인 회의는 국회가 아무 때나 정치의 중심무대를 차지하고 또 행정부가 국회의 권능과 위신을 부단히 존중해줌으로써만 제거될 수 있는 것이요, 또 국회에 대한 대중의 불신·멸시·증오는 정당정치가 대중 속에 뿌리를 박고, 또 국회나 국회의원이 몸가짐을 조심하여 부패·무능의 정평을 불식함으로써만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 국회처럼 위기가 조성되면 스스로 정치권외에 전락 방황하고, 또 행정부가 이를 기회로 [톱·리더]를 둘러 싼 극소수자들의 결단에 의해 무소불능의 독주를 거듭하고있는 조건하에서는 또 정당과 국민이 유추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당정치가 부패·무능의 화근이 되어있는 사회에서는 국회무용사상도 국회불신사상도 청산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앞서 우리는 [총 사퇴한 야당의원]을 원내에 복귀케 하는 정치적인 보철수리에 의한 [국회의 정상화]가 결코 대의민주정치의 기사회생을 의미치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바 있었지만, 금차 보선의 투표상황은 우리 나라 대의정치가 간신히 그 형해만 남기고 있는데 불과함을 여실히 입증해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대의정치제도를 진실로 부활시키고, 민주선거제도를 대중사회의 저변과 밀착시키기 위해서는 현 국회를 되도록 속히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 민의의 지지를 받는 새 국회를 출현케 하는 외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다. 이런 혁명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고 명목상 [헌정수호]를 위해 현 국회의 여맥을 그 임기까지 끌고 나간다고 하면 한국의 대의정치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해지고 말 것이다. 행정부가 국회의 존재를 귀찮게 생각하고 그 권능과 위신을 조금도 존중하려하지 않는데, 국민마저 국회를 무용한 것으로 관념 하게 된다면 남은 것은 공공연한 [파시즘]에의 체제상 접근뿐이다. 민주공화정의 자기 부정을 의미하는 [파시즘]의 체제적 접근이 반공하는 민주국가로서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는 여기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상은 현하 대의정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지만, 법제도면으로 보아서는 기권하는 사람보다 투표하는 사람이 더 많게 하여 민주선거제도의 기간을 유지키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입법조치가 필요 할 것이다. 첫째로 개헌을 단행하여 무소속의 입후보자를 허용함으로써 국민이 입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으로 확장케 하고 정계가 민의의 소재변천에 따라 개편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니게 해야한다. 둘째로 선거제도를 뜯어고쳐 유권자 과반수가 참가치 않은 선거는 무효케 하는 일방 투표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당선자가 없는 경우에는 1위 및 2위 득표자들 사이에 결선투표를 하게 하도록 한다.
아무리 소선거구·비교다수·단일당선제라 하지만 유권자중 과반수 이상이 투표하고 또 당선자가 투표 중 과반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정치원리의 기본적인 요구인 것이다. 세째로 정당한 이유 없는 기권자에 대해서 벌금을 과함으로써 참정권 행사를 법적으로 의무화해버리는 것이다. 상류층·부유층·의식층이 도리어 기권하기 좋아하고, 하류층·빈민층·무의식층이 주로 금품에 동원되어 투표장에 끌리어 나오는 사회의 민주선거는 사이비 민주주의의 표본이요, 기실 금권정치·천민정치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라 대중민주주의가 이 정도까지 변질·타락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면서 제도상 발본색원적인 대책이 있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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