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의 역설 … 활짝 열린 북극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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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만㎥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초대형 탱커선박 옵 리버(Ob River)호가 이달 초순 일본에 입항할 예정이다.

지난달 7일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항을 떠난 지 약 한 달 만이다. 이 배는 북반구가 겨울에 접어든 현재 북극 바다를 헤쳐 나오고 있다. 러시아 바렌츠해, 시베리아, 베링해협을 거쳐 태평양으로 나온 뒤 극동으로 가는 항로를 택했다. 대서양~지중해~수에즈운하~인도양~아시아를 잇는 전통 극동유럽항로에 비해 3주나 단축할 수 있는 루트다.

 북극항로의 이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덕분이다. 북극바다 얼음이 많이 녹아 대형 가스탱커가 여름철이 지나서도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물동량도 크게 늘고 항로 이용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올해 이 항로를 이용한 상업용 선박은 50척가량 된다. 2009년 2척을 시작으로 2010년 18대, 지난해 34대 등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옵 리버호는 이런 종류의 선박으로는 처음으로 북극항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기록을 쓰고 있다. 러시아 국영회사 가스프롬이 그리스의 소유회사인 디나가스에서 빌렸다. 이번 항해에는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이 동행하고 있다. 쇄빙선이 얼음을 깨가면서 항로를 확보한다.

 디나가스의 마케팅담당 이사 토니 라우리첸은 “북극해 해빙에 관한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이번 항해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수에즈 항로에 비해 거리를 40% 단축함에 따라 연료를 대폭 절감하고 시간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못지않게 아시아에서 가스·석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북극항로 이용 증가와 관계가 있다. 특히 지난해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를 겪은 일본의 대체 에너지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이 항로의 경제성이 주목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스생산국인 러시아는 애초 아시아보다는 미국 시장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함메르페스트의 노르웨이 LNG 플랜트도 캐나다 북부를 지나는 서북극 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미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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