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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땀 흘리지 않고 거두는 열매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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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진리를 찾겠다는 사람은 믿을지언정 진리를 찾았다는 사람은 믿지 말라.”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귀 엷은 이들에게 주는 충고다. 누군가 진리를 찾았다고 펄펄 뛰며 좋아하고 있는데 굳이 나서서 핀잔을 주거나 어깃장을 놓을 이유는 없겠다. 지드의 충고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자기의 신념을 마치 절대적 진리처럼 우상화하는 오만을 경계하는 뜻일 게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던가. 비록 무슨 깨침을 얻고 어떤 신념에 이르렀다 한들 그것을 늘 입술에 매달고 다니면서 언제나 어디서나 분별없이 외쳐댄다면, 그 깨침은 얼마나 초라하고 그 신념은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이성이 늘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공동체와 소통하지 못하는 ‘닫힌 이성’은 그 자체로 비이성적이다. 폐쇄된 성 안에서 저 홀로 고고하게 빛나는 신념은 독선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신념은 겸손해야 하고, 이성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 ‘열린 이성’이란 획일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소통과 다양성의 지혜일 것이다.

 획일주의에 휘둘리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시즘의 불행을 겪게 된다. 파시즘은 처음부터 거칠게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전체주의는 부드러운 이념으로 시작되며, 뜻밖에도 가치 지향적이다. 그 가치가 이성을 짓누를 때 도그마의 그늘이 덮쳐온다. 국민투표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영광’을 이념으로 내걸고 끔찍한 나치 독재를 펼쳤다. 선거와 투표만으로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도자의 어떤 신념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는가가 국민의 삶을 좌우한다. 자칫 아리안 민족주의처럼 ‘정신 나간 시대정신’을 선택하는 날에는 끝장을 맞게 된다. 옛적의 일만이 아니다. 이성과 과학의 첨단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보고 듣고 겪는 일이다.

 전기 끊긴 방의 촛불화재로 가난한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목숨을 잃는 현실에서도 부잣집 아이들의 공짜 점심, 공짜 기저귀까지 ‘평등’하게 챙겨주겠다는 무상급식·무상보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몽땅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그 재원조달 방안은 우물쩍 넘겨버리는 보편적 복지,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면서 북한 인권운동의 열정을 ‘이상한 짓’이라고 빈정대는 그야말로 이상한 인권의식, 30여 년 전 유신독재에는 지금껏 이를 갈면서 현재진행의 세습독재에는 턱없이 너그러운 청맹과니의 민족주의, 북핵을 제어할 아무런 경륜 없이 입술로만 불러대는 평화의 노래…, ‘평등과 복지’ ‘민족과 평화’의 따뜻한 이념들이 온 사회를 싸늘한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모순의 시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전이 권력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고속열차처럼 질주하고 있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지만, 열차는 앞으로 달려도 우리의 눈은 좌우 옆과 뒤편까지 두루 살피는 반성과 배려, 소통과 균형의 성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떠나온 곳에 남겨둔 애환(哀歡)의 기억들, 스치고 지나쳐온 곳곳에 영글어 가는 숱한 인연들, 그 기억과 인연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뭇 생명의 관계성…, 그 소중한 가치들을 깡그리 외면한 채 오직 눈앞만 보고 내달리는 일방통행의 달음질은 삶과 역사에 대한 인식의 빈곤이자 공동체를 불행으로 이끄는 포퓰리즘의 어리석음일 따름이다. 때로는 열차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서 기다리거나, 방향을 바꿔야 할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선거 캠프마다 폴리페서들로 넘쳐나건만 포퓰리즘의 오류를 꾸짖는 지성의 고뇌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찬찬히 살펴봐도 금방 허풍으로 드러날 공약들이 무슨 진리나 되는 듯 선거판을 마냥 휘젓는다. 땀 흘리지 않고 열매를 얻게 해준다는 맹랑한 공약(空約)들이.

 땀 흘리지 않고 거두는 열매는 없다. 증세 없이 복지 없고, 성장 없이 일자리 없으며, 관용 없이 통합 없고, 안보 없이는 평화도 없다. 진리를 찾았다는 말을 믿지 말라는 지드의 충고가 “정치인들이 펼쳐 보이는 나른한 무지갯빛 환상에 속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이번 대선은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상속한 남녀 후보의 대결로 좁혀졌지만, 과거 싸움으로 미래를 그르칠 수는 없다. 달리는 열차 위에서 필요한 것은 분노의 감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이다. 포용의 여성성과 투지(鬪志)의 남성성, 점진적 개혁과 급진적 변혁, 단계적 균형복지와 전면적 무상복지, 전천후(全天候) 대북정책과 외곬의 햇볕정책, 자유민주 헌정체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새 시대를 가늠할 역사적 갈림길에서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는 ‘열린 이성’의 선택이 절실히 요망된다.

이 우 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