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회상(1)-조국에 돌아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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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국이란 것이 무엇인가-. 구태여 산자수명치 않아도 좋다. 구태여 풍요한 자원을 자랑할 필요도 없다. 거기 산이 있고, 거기 강이 있고-. 같은 한가지 말(언어), 같은 전통의 젖가슴에 자란 겨레가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조국이다. 조국의 정의에 그 이상 또 무엇을 바랄까 보냐.』바로 이 주간-10월10일호「조일저널」(일한 특집호) 에다 나는 이런 글 하나를 썼다. 원고지로 겨우 여남은장 되는 짧은 글이기는 하나 이것이 전후 40여년 연분을 이어온 일본에, 내가 하직하는 마지막 글이 되었다.
마천루도 월세계정복도 내게는 달갑지 않다. 10원짜리 합승「버스」-일본쯤이면 벌써 폐물이 되었을 그 허물어진 차에 화물인양 얹혀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내 맘은 비할 데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여기가 조국이다」「이것이 조국이다」-깨어 버릴 꿈이나 아닌가 해서 나는 그 행복을 확인하느라고 열번 스무 번 혼자 속으로 이렇게 되씹었다.
실상 그런 꿈을 여러 차례 꾸기도 했다. 꿈속에 보는 조국은 언제나 강하나 사이-. 부산대교 같은 무쇠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 옆에는 파수보는 병정이 서 있다. 저 파수꾼을 어떻게 꾀면 내가 저 다리를 건너갈 수 있을까-. 날이 밝기 전에 되돌아 오마고 달래나 볼까-. 그런 생각으로 망설이다가는 꿈이 깬다. 그 허전하고 아쉬운 뒷맛-.
「하네다(우전) 국제공항-. 저녁나절에 송영「데크」에 서면 5분에 한 대씩 쯤은 여객기의 발착을 알리는「아나운스」가 들려온다.「카라치」니,「로마」니,「런던」이니 하는 소리가 연달아 귀청을 두드린다. 세계가 좁아지고 가까워진 것을 이토록 역력하게 실감으로 느끼게 하는데는 없으리라. 미국이니, 독일이니가 모두 지호의 거리로, 지구덩이가 마치 손바닥하나에 얹혀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내가 못 가는 나라가 있다. 그런 어느 나라보다도 내게는 더 먼 나라-조국.
「서울에를 간다」「서울서 왔다」- 이런 이들을 동경거리에서 자주 만난다. 그 중에서 1년을 두고 네다섯 번씩 서울·동경을 오고 가는 이가 있다. 대체 그들은 어떤 신통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일까-. 내게는 그분들이 요술쟁이처럼 신기하게도 보인다.
8, 9년이나 되었을까-. 언젠가 구주「하까다(박다)」에 여행 갔을 적에 거기 구주문학사 주최로 자그마한 모임이 열렸었다.
나를 위해서 모인 그 사람들 앞에 일어서서 나는『이번 걸음에 대마도로 가보고 싶다. 거기선 청명한 날이면 내 조국의 산이 어렴풋이 보이리라』고 했다. 그날 그 이야기를「구주문학」의 주재자인 원전종부씨가 후일에 조일신문에다 쓰면서『조국의 산을 바라보려고 대마도로 가겠다는 그 한마디에는 좌중이 암연해서 모두 말이 없었다』고 했다.
조국에를 돌아왔다. 내가 밟고선 이 흙이 바로 조국의 흙이요, 내가 우러러보는 이 하늘이 바로 조국의 하늘이다. 사무쳤던 그리움을 아껴가면서 인색한 수전노처럼 나는 오늘의 이 행복을 낭비하지 않으리라고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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