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재기-권투라이트·미들급 최송근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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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링」에서 자취를 감춘지 3년만에 홀연「사각의 정글」에「컴백」, 제 46회 전국 체육대회「라이트·미들」급에서 우승한 최송근(전남·31사단)선수에게는 남모르는 눈물이 많았다. 전형적인「파이터」로서「팬」들을 열광시켰던 철권의 사나이 최송근의 재기는 불굴의 투지로 역경을 극복한 투쟁기로 점철된다.
62년「자가르타」에서 열린「아시아」경기대회에 19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출전, 동「메달」을 획득한 최송근(22·나주군 형산포 토지개량조합관사)군은 이 화려했던「링·게리어」를 지닌 채 잠잠히「팬」들 눈앞에서 사라졌었다. 치열하게「펀치」를 주고받을 때 입은 상처가 각막을 다쳐 거의 시력을 잃게될 고비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63년1월 당시 대한체육회가 실시하던 동경「올림픽」대비 우수선수 합동훈련에 참가하여 4차 훈련까지 받던 중 의사의 권고로 아무 말 없이 4년간의 선수생활을 청산하고 귀향 길에 오른 최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무적의 철권답게 최군은 닥쳐온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작년 육군 31사단에 입대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몸을 솟구쳤다. 자신의 주무기인「메가톤」급「라이트·스트레이트」를 살리기 위해 깊은 산에 홀로 숨어 무거운「떡메」를 수 없이 내리쳤다.
최봉기(54)씨와 김성자(48)여사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난 송근군이「복싱」계에 발을 들여 놓기는 광주상고에 재학중인 16세부터. 광주체육관에서 이재인 사범의 지도를 받으면서 무쇠 같은 주먹을 다졌다.
1년간「복싱」수업을 마친 그는 큰 뜻을 품고 중앙무대에「데뷔」, 첫 관문인 전국 신인선수권대회「웰터」급에서 무난히 우승했다. 이때부터 상승가도를 질주한 어린「복서」는 수많은「타이틀」을 한 손에 쥐고 마침내는 국가대표선수로「자카르타」상공에 태극기를 올려 놓는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승리의 여신」이 언제나 그의 곁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경기도중 상대방「펀치」를 왼눈에 받으면서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수술을 받으면 어느 정도 나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 한번 더 일어서야 하겠다는 최군은 l년간 남몰래「하드·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그리고는 그가 자란 광주에서「전국체전」이 열리는 것을 계기로 재기의 기회를 잡기 위해 3개월 전 눈을 수술했다.
8일 하오「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승리를 거두자 최군의 눈에는 환희의 눈물이 또 한번 번졌다. 사랑하는 아들의 재기 전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어머니 김 여사도「링」을 내려오는 아들을 얼싸안고 목이 메는 듯 흐느꼈다.『최송근이「링」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한 다시는 쉽게 물러서지 않겠읍니다.「방콕」「아시아」대회,「멕시코·올림픽」까지 꼭 가서 이기렵니다.』
조용한 성격을 말하는 듯 두툼한 입술은 찬찬히 굳은 결심을 털어 놓았다.【광주=본사체전특별취재본부 현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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