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정보전의 가공할 무기로 등장

중앙일보

입력

에반은 또 “바이러스 제작은 해커 친구들에게 ‘나는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너는 못만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여기에는 친구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면도 있다. 실질적인 위협은 없이 말이다”라고 밝혀 또래집단에서의 자기과시욕이 바이러스 제작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시인했다. 에반은 이어 “바이러스 제작자들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넓게 생각해 보지 않고 ‘오, 내 이름이 여기 올랐네. 곧 명성을 얻겠군’이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한 연구 보고서는 바이러스 제작자들이 권태 때문에 바이러스를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앞서 지적했듯 저소득층의 동구권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의 생활수준이 낮은 지역 젊은 컴퓨터 천재들이 암울한 현실로부터 탈출 수단으로 바이러스를 제작 유포하기도 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들은 사이버 세계에서나마 강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컴퓨터 천재들에 의해 제작되는 가공할 위력의 컴퓨터 바이러스. 1970년대 수많은 컴퓨터 바이러스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최고의 악명을 떨쳤던 바이러스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최악의 바이러스들과 그 뒷얘기를 모아 보았다.

▷체르노빌(CIH) 바이러스 : 20세기 최대의 컴퓨터 바이러스로 알려진 CIH 바이러스. 일명 체르노빌 바이러스(체르노빌 원전 사고일과 바이러스 활동일이 겹친다)라고 불리는 이 바이러스는 매년 4월26일 발생한다. CIH 바이러스는 1999년 국내 컴퓨터 100만대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이는 당시 전국에 보급된 PC 700만대의 약 15%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컴퓨터를 복구하는데 든 비용만도 총 700억여원에 달했고, 업무 중단과 데이터 분실로 인한 손실까지 합하면 피해액이 최소 3,000억원에 이르렀다.

1999년 4월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의 검사실과 민원부서에 있는 500여대의 PC 중 30∼40여대의 컴퓨터가 이상증세를 일으켰다. 컴퓨터를 켜면 ‘operating system not found’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컴퓨터가 먹동이 됐다. 겨우 움직인 컴퓨터에서는 멀쩡하던 프로그램과 데이터들이 모두 없어졌다. 특수부와 형사부 검사실의 경우 컴퓨터에 담아둔 구속영장과 재판, 수사기록을 날려 수사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한국전력·법무부·서울시청·제2건국추진위·한국해양연구소 등 국내 주요 관공서와 민간 기업체에서는 바이러스 때문에 업무가 중단됐다. 서울시청의 경우 세무자료를 담은 컴퓨터까지 감염돼 자료 복구에 나섰지만 상당부분 자료를 잃게 됐다.

한국통신과 대덕연구단지내 전자통신연구소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등 컴퓨터 사용 비중이 큰 정보통신 관련 기업이나 연구소에서도 중요한 자료를 날리는 바람에 사업 추진과 연구활동에 차질이 빚어졌다. 한 병원은 PC 10대에 들어있던 외래환자 자료를 몽땅 날려 버렸고, 모 은행 지점은 전산망 마비로 거래 대기업들의 수출업무까지 마비시켰다. 한 중학교는 주말에 치를 예정이던 중간고사 출제자료를 날려 시험을 1주일 뒤로 미루기도 했다. 무려 2,000여대의 PC가 한꺼번에 다운된 대학도 있었다.

당시 CIH 바이러스는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 놓고 있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큰 피해를 낳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터키·방글라데시·홍콩 등 아시아 지역의 피해가 컸다. 외신보도는 우리나라의 피해가 전세계 상위 5위 안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1999년 4·26 대란의 서막은 국내 한 PC통신망 자료실에 CIH에 감염된 파일이 올라오면서부터였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사실을 모른 채 감염된 파일을 내려받았다. 그 뒤를 이어 한 회사의 워드프로세서 실험판이 CIH에 감염된 채 배포됐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크래프트’ 게임 프로그램도 CIH 전염에 한몫했다. 한 컴퓨터 잡지의 공짜 CD 타이틀도 CIH 바이러스 감염의 한 경로가 됐다. 대란은 이처럼 어이없는 곳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 컴퓨터 바이러스의 공포

  • 코드레드에 철저히 농락당한 IT강국 대한민국
  • 컴퓨터 바이러스, 과연 그 정체는?
  • 세계 최초의 바이러스는?
  • 진화·발전 거듭하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생명력
  • 바이러스 제작하는 10대의 조숙한 천재들
  • 20세기 최악의 바이러스는 CIH
  • 암울한 이메일의 미래
  • 상상을 초월하는 ‘러브레터’ 전파속도
  • 창과 방패, 최후의 승자는 누구?
  • 고성표 기자
    자료제공 : 월간중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