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모비 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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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거나 장례 행렬을 만나 그 행렬 끝에 붙어서 따라갈 때, 특히 심기증(心氣症)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후려쳐 날려 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 구절 때문이었다. 유난히 시끄러웠던 주말에 『모비 딕』(白鯨, 1851)을 집어든 것은. 흰 고래라고는 전자오락 ‘보글보글’의 그놈밖에 쫓아본 적 없지만, 11월이 가기 전에 ‘백경’을 잡아야겠다 마음먹었던 것은 책의 이 도입부 때문이었다.

윌리엄 터너, 눈보라 :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1842, 캔버스에 유채, 91.4×121.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모비 딕』은 흰 머리 향유고래에게 한 다리를 잃은 포경선 선장 에이해브가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고래와 싸우다 바다에서 최후를 맞는다는 해양모험소설이다. 저자 허먼 멜빌(1819~91)은 22세에 포경선의 선원으로 남태평양에 나갔다. 서른둘에 쓴 『모비 딕』은 그의 사후 재평가돼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이 됐다.

 그 시대, 또 다른 집념의 사내가 있었다. 영국의 대표적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는 60대에 증기선 돛대에 몸을 묶은 채 폭풍에 흔들리며 네 시간을 버틴 후 ‘눈보라’를 그린다. “이런 장면의 실상이 어떤지 보여 주려고”라며. 풍랑과 싸우는 범선을 즐겨 그렸던 그의 그림은 추상화에 가까워졌다. 구체적 사실을 묘사하기보다는 몸으로 체험한 느낌의 덩어리를 색채의 뒤엉킴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도 저물고, 낭만주의도 한물갔다. 기세 좋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뭔가 쫓는 모습도 보기 드물다. 그러나 춥지만 비를 눈으로 바꿀 정도는 못 되며, 겨울이 온 듯하나 아직은 아닌 11월, 한 해가 다 간 것 같은데 아직 달력의 한 장이 남아 ‘포기하기엔 일러’라고 속삭이는 11월, 그 11월은 그대로다. 이슈메일은 바다로 떠났다가 겨우 살아 돌아와 이야기를 전하고, 나는 못다 읽은 책을 들고 겨울을 난다.

 장광설을 즐기던 대항해시대의 바다 사내, 멜빌은 30여 년간 세관 검사원으로 일하다 세상을 떴다. 그는 『모비 딕』에 이렇게도 썼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