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야당의원 총 사퇴」「쇼」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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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중당의 최고위원·지도위원 합동회의는 『당초 의원직 사퇴는 당이 잘못 설정한 지도 노선』이었음을 인정, 국민 앞에 사과성명을 내고 독재정치를 견제키 위해 당 소속의원이 『무조건 조속한 시일 내에 원내로 복귀할 것』을 결의했다. 이 결의가 발표되자, 원내복귀를 하려는 온건파와 원내복귀를 끝까지 않으려는 강경파 사이의 대립은 절정에 달해 민중당의 내분은 겉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동 당 소속 국회의원의 대다수가 원내복귀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민중당소속의원의 원내복귀는 내분의 귀추와는 무관하게 10월초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로써 지난 8월12일 야당의원 61명이 국회를 이탈함으로써 비정상화했던 공화당만의 일당국회는 간신히 파탄을 면하고 앞으로 국회는 양당제의 형식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서서히 그 기능을 회복하게 될 것 같다. 야당의원 복귀에 의한 국회정상화는 형식상 양당정치를 다시 구현할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위기에 처해 정치권 외로 전락했던 국회가 다시 위신을 회복하기는 어렵고 또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국민을 우롱한 복귀의원 「클럽」이 「준 여당적 존재」로 추하리라는 것은 거의 필지라고 할 것이므로 앞으로 이 나라와 의회정치는 명목만의 여·야 대결로 민주정치를 위장해 나갈 공산이 크다. 민중당의 국회이탈과 복귀소동은 정국을 악화시켜 정치부재상태를 조성하는데 부채질했을 뿐만 아니라 야당에 대한 국민의 신임과 지지를 그 근저에서부터 실추시켰는데 앞으로 야당이 취해야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이냐에 관하여 많은 문제점과 교훈을 남겨주는 것이다.
민중당은 한·일 협정비준을 막지 못할 경우에는 의원직을 버리겠다고 국민 앞에 되풀이 공약했었다. 그런데 비준저지도 못하고 또 저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던 공약도 못 지킨다면 이제 국회로 복귀해야 하겠다는 명분은 대체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보아 복귀의원은 복귀를 전제로 국회를 이탈함으로써 정국불안과 사회혼란만 가승 시켰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의원직 사퇴란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키 위한 일막의 정치적 사기극에 불과했던 말인가. 그들은 변명하기를, 우리가 사표를 냈던 것은 일당국회를 조성하여 공화당을 궁지에 몰아 넣고 국회해산, 총선 실시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을 뿐더러 야당이 원외로 이탈한 틈을 타서 공화당정권이 일당독재를 자행하고 있으니 이제는 국회에 돌아가 이를 견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명으로 국민을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당의원이 이탈해도 공화당만의 일당국회가 비준통과를 강행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측치 못했다거나 위기상황이 나타나면 정부와 여당이 독선 독재 무소불능의 강경파를 쓰리라고 생각지 않았다고는 정치한다는 사람으로서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측력의 부족은 정치인으로서의 자격부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의회주의 하의 정당이 국가의 진로를 에워싸고 여당과 결전하기 위해 스스로 국회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있어서는 주밀하고도 원대한 행동계획이 서있어야 하며 또 어떠한 경우에도 투지를 관찰하겠다는 혁명적인 용기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전혀 없이, 그저 즉흥적으로 원외로 뛰쳐나와 원외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호응을 얻어 보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일장의 사과성명이나 내고 국회에 복귀하겠다고 하는 데에 야당의 정치빈곤이 있고 정권투쟁을 위한 정열과 기백의 빈곤이 있다.
이제 민중당소속의원은 사과성명을 내고 국회에 되돌아간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다고 사과하겠다는 것인지, 우리는 그들에게 한 가닥의 신의와 성실이나마 남아있는지 그 내용을 주시코자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과성명을 냈다고 하여 정국불안과 사회혼란을 조성하고, 많은 학생·교수·시민으로 하여금 화를 입게 한데 대한 책임이 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책임은 그들이 사퇴를 끝까지 관철하거나 혹은 정계에서 은퇴함으로써 만 간신히 해제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의원직과 정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연연한 나머지 아무런 명분도 없이 국회에 돌아가면서 또다시 국민을 우롱코자 하고 있다. 복귀의원이 원내에서 무슨 주장을 내 세우건 간에 국민은 그런 기회주의자들을 야당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순수·선명한 야당이 새로 나와야 할 객관적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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