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향후 전망] 미국, 북한 체제보장으로 核해법 찾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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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 북.미 양측이 대화를 통한 해결의 접점을 찾는 분위기다. 7일 미국 정부가 대북 대화 용의 입장을 밝힌 데 이어 하루 만에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공식적인 대북 체제보장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외무성 담화 등을 통해 "한반도의 핵문제는 체제보장을 위한 북.미 불가침조약만 체결되면 해결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 만큼 파월 장관의 발언은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명분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파월 장관이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의 노력과 제네바 합의로 인해 많은 핵무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한 것은 주목된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 부정(否定)이 곧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방식의 원점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2001년 6월의 새 대북 정책을 발표하면서 제네바 합의의 이행 개선과 클린턴 행정부 때의 핵.미사일 등 분야별 협상이 아닌 포괄 협상을 내놓은 것은 이와 맞물려 있었다.

따라서 파월 장관의 이 발언은 대북 정책 변화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고, 북한으로선 그만큼 고무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이 서둘러 대북 대화 길 트기에 나선 것은 현 단계에서 외교적 해결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중국.러시아의 대북 대화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문제에 외교력을 집중하기 위해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부의 방향 선회에 따라 북.미 대화 가능성은 커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 정부 관계자가 최근 제3국에서 잇따른 접촉을 해온 점도 대화의 전망치를 높여준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양측은 최근 물밑에서 조율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남측이 14일로 제안한 남북 장관급 회담 날짜를 1주일 늦춰 21일부터 개최하자고 수정 제의해온 것도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좀 더 지켜본 뒤 남북대화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도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대미특사의 방미결과를 놓고 북한을 압박하면서 북.미대화의 길로 끌어내는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신년 공동사설에서 현 정세를 '북과 남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이라고 규정한 북한이 장관급 회담에서 '민족공조'의 목소리를 높이거나 남측의 북핵 문제 제기에 반발할 경우 회담은 꼬일 가능성도 있다.

또 북.미 대화 재개 여부도 아직 불확실하다. 미국은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 발표문에서 대화 의제를 북한의 핵 관련 의무사항 이행으로 국한하고, 어떠한 대가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파월 장관이 시사한 공식적인 체제보장이 포함되지 않는 대화에는 응하지 않을 수도, 또 불가침조약이 아닌 문서 형태의 체제보장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파월 장관의 발언이 국무부의 입장만을 대변한 것인지, 아니면 백악관.국방부와의 조율을 거친 것인지가 불분명한 점도 북한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지 모른다. 북한은 당분간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문제, 미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지켜보면서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오영환.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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