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호주의 인종증오 범죄를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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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호주에서 한국인이 무차별 집단폭행 당하는 사건이 올해 들어 알려진 것만 네 차례다. 한인들이 인종증오 또는 인종차별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해 7월부터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브리즈번에 거주하고 있는 조모(28)씨는 지난 25일 심야에 집 주변에서 현지인 청년들로부터 집단으로 구타당했다. 올해 발생한 네 차례의 한인폭행사건은 모두 백인 청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집단폭행을 했다. 게다가 현지 일본인·중국인도 이런 피해를 종종 당하고 있어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증오범죄라는 심증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현지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벌이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인 한국인 앞에서 아시아인들은 멍청하고 어리석다는 둥 인종차별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인종증오 범죄가 만연한데도 호주 정부당국이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외국에 주는 것은 호주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달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앞으로 10년 동안 호주가 아시아와 더불어 발전할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주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을 인종증오 범죄로부터 보호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시아와의 협력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호주는 2009년에도 인도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사건이 잇따른 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로부터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강력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 이후 인도 유학생이 대거 떠나 한때 이전의 30% 수준까지 줄었다. 호주는 교육산업의 주요 고객을 잃어야 했다.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호주 정부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겨냥한 인종증오 범죄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호주에는 유학생 3만 명, 워킹홀리데이 체류자 3만 명을 포함해 14만 명 정도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이 교민 사회의 안전을 위해 한국 정부는 호주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 교민 안전은 정부의 핵심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