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실 통계와 부실 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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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라 드러난 정부 기관들의 통계 조작 사건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근대 행정에서 통계는 정책의 수립.집행과 검증 과정에 걸쳐 필수업무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만큼 통계 조작은 즉각 정책의 실패와 정부의 신뢰도 손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의 통계 조작은 기초 자료의 수집은 물론 가공.분석 단계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동부 산하 고용안정센터의 취업자 수 부풀리기는 기초통계 수집 단계의 전형적인 조작 사례로 볼 수 있다.

노동부가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경인 등 6개 지방노동청 산하 1백67개 고용안정센터 가운데 25개 센터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이 취업 실적으로 보고한 1만5천5백7명 가운데 45.3%에 해당하는 7천18명이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취업한 근로자를 다시 실적에 포함시키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취업자로 변조하는 등 다양한 조작 수법이 동원됐다.

나머지 고용안정센터까지 전면 조사를 실시하면 조작 사례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가공 단계의 오류로는 통계 주무기관인 통계청에서 적발된 실질임금 상승률 집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부터 올 5월까지 월별 실질임금 상승률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몇달은 원래 적용해야 하는 소비자 물가지수 대신 생산자 물가지수를 적용해 그릇된 지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통계청은 담당 직원의 단순 실수였으며, 의도적인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필 '실수' 한 기간이 지난해 5~9월로, 기업들의 임금협상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의심받을 소지가 다분히 있다.

생산자 물가를 적용해 실질임금 상승폭을 계산하면 소비자 물가를 적용할 때에 비해 임금 상승폭이 크게 나와 근로자측의 입지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취업 통계는 가뜩이나 시비가 많은 실업률 통계나 고용대책의 신뢰성을 실추시킬 수밖에 없다.

산업생산이 두달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며 경기 침체의 본격화를 알린 지난 6월과 7월에 실업률만은 각각 3.3%, 3.4%로 연중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는 정부 발표의 신뢰성도 의심받고 있다.

관련 직원의 문책을 포함, 통계 조작을 근절할 대책이 시급히 강구돼야 한다. 나아가 잘못된 통계를 근거로 집행됐을 방대한 고용 관련 예산의 실태도 국정감사 과정에서 세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통계 조작 시비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이 정부의 행정능력과 복무기강이다. 부실한 통계 관리는 항공안전 2등급 분류나 빗나간 근로소득세 세수 추계 등과 더불어 정부의 행정능력이 안정성.신뢰성 면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선 조직의 조작이나 오류가 하루 이틀 진행된 것도 아닌데 정부 내의 수많은 결재나 확인 과정에서 전혀 걸러지지 못했다는 점 역시 공무원 사회의 기강 해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 우려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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