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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미결함」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캐쉬미르」전에 발묶인 인도의「덜미」를 잡고「히말라야」산허리에 급박하던 전운이 하룻밤 사이에 극적으로 걷혔다. 중공이 인도에 대해 중공령을 침범한 인도군과 시설을 철거하라고 최후 통첩을 낸 것은 지난 16일. 중공은 스스로 설정한 시한 23일 상오1시 (한국시간) 직전인 22일, 꼭 한주일만에 대인최후 통첩을 철회하였다.
이렇게 해서 중공이 말한 이른바 [중대사태]는 회피된 것이다. 중공의 최후 통첩이 철회되기 9시간 앞서「파키스탄」과 인도가「유엔」의 휴전명령을 수락함으로써「캐쉬미르」의 총성도 멎어 좌우로「칼」을 받고 있던 인도의 손발이 우선은 풀린 셈이다.
그러나 인도는「시킴」국경을 넘어 중공을 침범한 일도 없고 따라서 중공의 최후 통첩을 받고 그 군대를 철수시킨 일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측의 이 주장과 「캐쉬미르」와 중·인 국경분쟁에 얽힌 중·인·「파키스탄」삼각관계를 계산에 넣는다면 중공이 이번 인도의 턱 앞에 바싹 들이댄「최후통첩」의 저의와 그「득실」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중공은「캐쉬미르」평원서「파키스탄」과 열전을 벌이고 있는 인도에 최후 통첩이라는「구두탄」을 발사함으로써 인도의 전세를 꺾어「파키스탄」을 측면 지원하고 동시에 중·인간의「미해결의 장」인 국경분쟁서 여유있게 발판을 굳히면서 최후 통첩에 임하는 인도측의 반응을 살피자는 것이었던 것 같다.
중공이 애당초 인도와의 전면전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히말라야」의 국경지대에 전쟁규모의 군대를 집결시킨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서 짐작이 간다.
중공은 이 한계 있는 도전으로 견원지간의 인도의 국위를 상대적으로 떨어 뜨리고 인·중·「파키스탄」에 걸린 소련의 입장을 더욱 궁지로 몰면서「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최악의 순간에 측면지원을 해준「채권자」의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전운이 걷힌 지금 남은 문제는 중공이 또 언제 「수의 압력」이라는「전가의 보도」를 휘두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로서 세상의 관심을 끄는 것은「파키스탄」이「유엔」결의를 수락하면서「유엔」에 「캐쉬미르」분쟁해결의 마지막 기회를 주되 분쟁해결에 실패하면「유엔」을 탈퇴하겠다고「수카르노·엑센트」를 빌어 못 박은, 그「말꼬리」의 향방이다.
이것은「유엔」은 물론 미·영·소간이 이번 사태에「파키스탄」원조를 거부한 나라들에 대한 반발에서 오는「협박」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유엔」의 문전에서「유엔」을 백안시하는 중공에 대한 우호의「제스처」로 해석되기도 한다.
「파키스탄」이 이같이 탈퇴경고 했지만「유엔」으로서는「캐쉬미르」문제해결의 묘수를 못 가진 게 사실이고 보면「캐쉬미르」지역의 항구적인 화평의 전망은 어둡기만 한 채 중공·「파키스탄」제휴의 호기만 마련해준 결과 밖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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